2017년 1월 30일, 여행 131일 차, 세렝게티 국립공원
응고롱고로는 고지대이다. 그만큼 낮에는 선선하지만 밤에는 춥다는 단점이 있다. 가이드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꺼운 옷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긴팔 하나와 침낭에 의존해 쌀쌀한 밤을 보내야 했다. 괜히 컨디션이 안좋은 듯 한 상태로 오늘의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중요했다. 오늘이 바로 게임드라이브의 하이라이트! 탄자니아, 아니 아프리카의 꽃!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입성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응고롱고로 국립공원을 나서서 긴 초원길을 지나면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입구에 다다른다. 아직은 탄자니아의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세렝게티의 초원은 푸른 빛 보다는 갈빛을 띄는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예전 KBS에서 하던 '동물의 왕국'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항상 등장하는 말이 '세렝게티 초원에서는~'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초원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입구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라이언 킹 주제가인 Circle of life를 들으며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입장했다!
입구를 들어서면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평야가 우리는 반긴다. 끝도 보이지 않는 평야와 하필 기가 막힐 정도로 좋은 아침의 날씨가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풍경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아프리카 내의 국립 공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렝게티가 아프리카 국립공원 중 최강인 이유는 어마어마한 개체 수이다. 아프리카 내의 다른 국립공원들은 '여기에는 주로 이 동물이 많이 서식한다'라는 개성이 있는데, 세렝게티에는 그런 개성 따윈 없다. 왠만한 동물은 모두 볼 수 있고 그 수 마저 압도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모든 이미지는 클릭하면 커지니 크게 크게 감상하시길!)
모든 동물들을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고, 동물원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보니 동물에 큰 흥미가 없던 나 자신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택셔널 지오그래픽(?)' 화보를 찍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게임드라이브를 하고 있던 시기는 건기에서 우기로 변경되는 시점의 끝자락이었기에 동물 무리가 이동하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았는 장면들만 소개해보겠다. 먼저 가장 긴박했던 순간 중 하나였는데, 넬리가 무전을 듣고 급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BIG 5 동물 중 완성하지 못했던 표범을 볼 수 있다는 무전이 왔기 때문이다. 표범이 정말 중요했던 이유는 게임 드라이브 첫 날 부터 보들부부는 '표범만 보면 우린 끝난다'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꼭 표범을 놓치지 않고 봐야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표범을 보기는 보았는데, 처음에는 표범의 보호색 때문에 너무나 찾기 힘들었다. 사진 속에서 표범을 찾아보자!
또 한 가지 장면은 코끼리였다. 코끼리는 첫 째날 부터 발이 채이게 봐왔는데 뭔가 멀리서 보게 되고 강렬하게 보는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던 길목 앞 쪽에서 코끼리 몇 마리가 행군을 하고 있었고, 때마침 차 바로 옆에 코끼리가 멈춰선 것이다! 심지어 그 커다란 고개를 우리 쪽으로 향해 있던게 아닌가! 셔터를 눌러 코끼리를 담았고, 그 코끼리 사진은 내가 담은 동물 사진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 되었다.
마지막은 정말 이 게임 드라이브에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게 만들었던 장면이었다. 자세한 설명 없이 사진을 통해 감상하자.
사실 세렝게티에는 워낙 동물이 많다보니 동물을 그냥 보는 것에는 큰 메리트가 없다. 사냥을 하는 모습, 출산을 하는 모습, 대 이동의 모습, 그리고 위와 같은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같이 의미있는 장면들이 더욱 가치를 가진다. 가이드 넬리도 '보기 어려운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우리는 본전 뽑았다!
캠핑사이트에 미리 방문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가 쉬는 동안 요리를 담당하는 쿠커와 넬리가 텐트를 쳐놨다.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비가 다시 오는 것이었다. 설치된 텐트를 부랴부랴 쿠커와 넬리가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첫 날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보들부부와 우리는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우리가 추가 사파리(라기보다는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물기가 사라져 있었다. 넬리는 '바람이 말려 주었어' 라고 말하지만 쿠커가 닦아냈으리라. 넬리가 어제 제대로 배달해주지 못해 먹지 못한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비온 뒤 하늘은 미치도록 맑았다. 세렝게티의 대초원에서 동물과 함께 별을 보는 것을 나름의 로망으로 두었는데, 동물은 아마 근처에 버팔로가 돌아다니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캠핑장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대자연의 한복판에 내가 서있음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