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 2월 2일, 여행 132~134일 차, 나이로
세렝게티에서의 밤은 행복했다. 보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보았고, 함께했던 분들과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세렝게티를 떠날 때가 되었다. 세렝게티뿐 아니라 탄자니아와는 여기서 작별하게 된다. 추후 행선지를 우간다로 정했다. 우간다에는 우연이가 아는 선교사님이 사역을 하고 계셨다. 우간다를 가기 위해서는 케냐를 반드시 가야 했는데 마침 보들 부부도 이집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반드시 케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남은 며칠을 함께 더 보내기로 했다. 이별이 몇 발자국 뒤로 밀려가는 순간이었다.
세렝게티의 아침은 서늘했다. 응고롱고로보다 지대는 낮지만 왔던 비가 가진 한기가 차갑게 올라왔다. 새벽에 사냥을 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여 빨리 준비해서 일어나 차를 타고 게임 드라이브를 나섰지만 아쉽게도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또 한 번 사랑을 나눌 뻔 한(?) 사자들의 모습만을 봤을 뿐...
돌아와 아침을 먹고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의 베이스캠프 격인 마을인 아루샤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일정이다. 돌아가는 길 세렝게티의 마지막 풍경을 눈에 담았다. 누와 얼룩말이 어울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던 것. 아마 이동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동물들이 무리 지어 행동하기 시작한 것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이 장면은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배회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던 세렝게티 초원과 그에 동물이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이 주는 웅장함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세렝게티를 떠나왔고, 여행사에서 제공해준 아루샤 숙소에서 일행들과 소회를 나누며 편안한 밤을 보냈다.
다행히 어제 제공해준 숙소에서 바로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조사했던 가격보다 저렴해서 뭔가 수상하긴 했어도 바로 나이로비로 간다는 말을 믿고 버스 티켓을 끊었다. 노상 여행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렇듯 쉽게 풀리는 일은 없다. 대형 버스일 줄 알고 예약했던 버스는 25인승 미니버스인 데다가 사람도 거의 다 찬 상태로 이동했기에 버스가 불편하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탄자니아에서 케냐로 갈수록 적도에 가까워지므로 해도 머리 꼭대기에서 더욱 강하게 내리쬔다. 더위와 비좁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나라로의 접근과 싸워가며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남아공에서 여행을 출발하기 전 캣 앤 무스의 재선이는 '나이로비는요 형, 형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의 혼돈의 카오스가 있는 곳이에요'라고 충고해준 바가 있었다. 예상대로 혼잡했다. 교통체증은 내가 여태껏 겪은 아프리카의 그것 중 가장 강력했고, 흥이 많던 탄자니아에 비해 사람들은 차가웠다. 게다가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우리는 숙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겨우 찾은 숙소는 인터넷이 안돼서 우버를 쓰려던 우리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힘겹게 저렴한 심카드를 구입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J형 께서 엄청난 제안을 하셨다. 본인에게는 일종의 '절대 카드(?)'가 있는데 그것을 한식당에서 쓰자는 것이었다. 루사카에서 한식당을 갔던 우리지만 배낭여행자에게 한식당이 어떤 의미인가! 나와 우연이는 민망하고 죄송스럽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가 없다. 겨우 구입한 심카드로 우버를 부르려 했지만 우버 기사들이 우리를 태우러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케냐에서는 지도가 정확하지 않아 우버를 부르고 나서 전화를 해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려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인터넷만 되는 심을 샀기에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사들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탔지만 이번에도 교통체증이 우리를 방해했고, 결론적으로 숙소를 나선 지 1시간 만에 택시를 타서 1시간 30분 만에 식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삼겹살을 비롯한 여러 한식을 주문하고 두 부부는 이집트에서 사용할 먹거리들을 구매했다. 알고 보니 그 절대 카드는 아는 지인분께서 곤경에 빠지거나 힘들 때 한 번씩 마음 놓고 사용하라고 제공해 주셨다고 했다. 보들 부부뿐 아니라 익명의 그분께도 감사를 표해야겠다. 어쨌든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비롯하여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와서 한 잔 술을 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노래도 부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는데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야기해주던 보들 부부와 그런 나에게 소금을 뿌리며(?) 장난스럽지만 진지하게 경청해주는 우연이의 모습, 그날의 공기, 그날의 음악, 그 속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여행 중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나는 케냐에서 적도선을 보고 싶었다. 남미에서는 적도선에서 멈추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많이들 사진을 찍지만 정작 아프리카에서 적도선 인증샷을 찍는 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도선은 우간다로 넘어가는 때에 지나간다는 정보를 확보해서 케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우연이에게는 케냐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비자 사증면 추가! 딱 한 번에 한하여 사증 페이지를 추가할 수 있다. 50개국 이상 여행하느라 사증 페이지가 가득 차 가는 우연이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우리 숙소에서 현지 이동수단인 '마타투'를 타고 저렴하게 대사관 근처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케냐 대사관의 직원이 우릴 맞이했다. 당일 여권 사증 추가는 다소 어렵지만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단순히 페이지를 붙이는 일에 시일이 필요하다는 것에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이라는 말도 있으니 존중해야 했다. 오후 2시에 다시 돌아오라고 직원 분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근처에는 식당도, 마땅히 기다릴 만한 곳도 없었다. 뭔가 빨리 내쫓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기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불친절하지는 않았어서 참 애매했달까. 근처에서 과일로 끼니를 때우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프리카에선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유명하며 그래서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에 갔는데 나는 정작 티를 시키고 말았다. 바보같이 그지없다. 여권을 찾고는 우버를 이용해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보들 부부가 장을 보았다.
보들 부부는 고추장찌개를, 나와 우연은 짜장을 만들어서 먹기로 했다. 한국 사람 네 명이서 요리를 같이 하니 한국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날 먹은 고추장찌개와 짜장을 잊을 수가 없다. 보들 부부는 그날 비행기로, 우리는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케냐를 떠나기로 돼있었기에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부부는 이집트로 이동해 다합에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러 간다고 했다. 회유 끝에 나도 다합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한다. 아마 우연이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보들 부부는 짐을 챙겼다. 어제 식사를 얻어먹은 것도 죄송한데 안 쓰는 짐들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내겐 곧 추워질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입으라고 점퍼를, 신발이 낡아진 우연이에게는 트래킹화를 주셨다. 보들 부부 Hana누나와 J형에게는 무한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짐을 마친 그들과는 작별을 해야 했다. 아마 그들과 나눈 따스한 시간들과 마지막 작별의 시간이 당분간은 마음에서 깊이 남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