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알 수 없는 우간다

2017년 2월 3일~4일, 여행 135~136일 차, 우간다 소로티

by 오상택


보들부부를 보낸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우리는 우간다의 시골 마을, 소로티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간다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가 너무 없이 이동하는 바라 불안요소가 조금 있었다. 나와 우연이 모두 여행을 100일 이상, 200일 이상 진행했지만 정보가 부족한 이동, 그것도 이 시시각각 바뀌는 현지인들의 말로 혼란되는 상황의 이동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우버와 실랑이를 벌인 후 우버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2월 3일 : 여정 불확정성의 원리?

케냐 나이로비에서 소로티로 가는 버스는 사실 어제 대사관 방문 후에 구매했다. 이 티켓 구매에도 사연이 얽혀있다. 나이로비에서 시골마을인 소로티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선교사님의 정보에 버스 티켓 창구로 갔지만 그런 버스는 없다는 말이 태반 이었다. 한 회사에서 버스는 있는데 가격이 5200KSL (한화 약 ??원)이었다. 이 가격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된 이유는, 나이로비에서 우간다 수도인 캄팔라까지 이동이 거리가 ??km에 가격이 1300KSL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캄팔라에서 소로티까지의 거리가 그 거리만도 못했으니 아무리 많이 주어도 3000이나 2500정도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섰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회사를 알아봐도 해당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결국 그 회사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5200은 말도 안되는 가격이니 2000이 어떠냐고 하니 절대 그가격에는 안된다고. 얼마가 너의 Last Price냐 물으니 2500. 상한선으로 정해놓은 가격이 그러하니 거기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도 2000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힘들게 산 티켓인 만큼 가는 것은 편할 줄 알았는데 버스가 없단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다른 버스 회사의 수단까지 가는 버스에 합승해서 타야하는 것이라고. 게다가 버스 타는 위치도 달라 중간에 픽업해서 탑승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20분 정도 걸어서 내려간 한 주유소 앞에서 버스를 타야했다. 사전 설명도 없이 막무가내로 끌고가는대다가 처음엔 웃돈을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굉장히 난처하고 피곤했다. 'This is Africa!'라고는 하지만 어제의 티켓 실랑이부터 이런 어이없는 행정처리까지, 불쾌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에 소로티에 갈 수 있는게 어디냐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버스는 생각외로 괜찮았다. 미니버스보다야 나으면 다행이니까.

그런데 버스가 어쩐일인지 속도가 영 빠르지가 않았다. 오래된 버스라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지도를 계속 확인하면서 소로티로 바로가는지를 보았다. 애석하게도 적도로 유명한 케냐의 한 포인트는 지나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케냐 국경을 넘던 시점. 마지막 케냐 커피

그런데 적도선을 지날 때 즈음, 우리가 예상하고 있던 루트와 다른 방향으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가면 될 길을 돌아서 움직이던 것! 차장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다른 국경을 통해서 우간다로 들어간다'라는 말 뿐! 당초 예상했던 도착시간을 넘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아침 8시에 탑승한 버스였고 도착 예정 시간은 약 저녁 6~8시 경이었는데, 우리가 우간다-케냐 국경에 도착한 것이 8시였다. 알고보니 다른 국경을 통해 뱅 돌아가는 일정이었으며 이후 루트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 여행에서 도착할 시간을 미리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계획상으로도 문제가 생기지만 정신적, 체력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 덕분에 원래 도착해야할 시간보다 최소 7시간, 최대 9시간을 더 이동하게 되었고, '여정 불확정성의 원리'덕에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녹초가 되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소로티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가 정신 못차리던 현장을 늦게까지 기다려주신 선교사님이 꺠워주셔서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여정 불확정성의 원리는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우릴 괴롭히게 되었다.


2월 4일 : 돕는다는 것

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고, 9시가 다되어서야 기상할 수 있었다. 우간다에서 역시 우연이가 알고 있는 선교사님 댁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 곳에 계신 선교사님은 학교를 운영중이셔서 이 곳에서 우리는 작은 손길을 더하고 싶어 오게 된 것이었다. 추가 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NGO 도 방문할 수 있다면 가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러한 뜻을 말씀드렸더니, 오늘 바로 기아대책에서 파견되신 분을 뵈러 가자고 하셨다! 사실 우간다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지역 선교 활동이나 봉사 활동을 하는 단체에 찾아가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우연이의 말 때문이었다. 군 생활을 마치시고 현재는 기아대책에서 일하고 계셨던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효용의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내가 예전에 일을 하면서 보기도 했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지원하는 손길에 대해 굉장히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체적인 기구를 운용케 하여 자원 봉사자들이나 원조 받은 것에 대한 관리유지나 발전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조직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도움 받은 여러 혜택에 대한 효용을 수혜자들 스스로 지속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멀리서 펜대나 굴리면서 봉사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무튼 우간다에서 일하시는 기아대책 팀장님께서는 정말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내년을 마지막으로 우간다를 떠나신다는 말에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아보였다. 근처에서 지역사역을 하신다는 다른 전도사님도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다음에는 사역지나 봉사활동 지에 직접가서 느낄 수 있는 봉사활동을 만나기를! 돌아오는 길에 장을 들렀다. 소로티 근처 쿠미라는 지역에 일 주일에 한 번씩 서는 장. 여유가 있다면 혼자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선교사님이 물건을 이것저것 사시더니 신속하게 돌아와야 했다.

알고보니 저녁에 선교사님이 '특식'이라며 염소를 잡아주시려고 했던 것! 와서 아무것도 안한데다가 어제 늦게 도착해서 염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잘 대접을 해주셨다. 말씀으론 '우리도 몸보신 해야되니까'라고 말씀하셨지만 손님을 위해 대접해주신 선교사님의 정성이 느껴졌다. 잡내가 나지 않아 양고기 같은 냄새가 심한 고기를 못먹는 우연이도 곧잘 먹었다. 앞서 기아대책의 활동들도 그렇고 선교사님께서 우리를 대접해 주신 것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님을 항상 느낀다. 이렇게 받은 것들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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