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9일, 여행 140~141일 차, 소로티와 엔테베
우간다에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심카드를 사던 날 나와 우연은 많은 고민을 했다. 에티오피아로 이동하는 날을 정한 순간 우리가 떠날 날도 정해지고, 뭔가를 이 곳에서 하고 가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도 남았다. 7일까지 겨우 도서관 청소만을 해서 신세를 지는 우리로선 마음이 더 촉박해 졌다. 단 하루 남은 마지막 여유에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8일이 되었다. 소로티에서 온전히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은 또 하나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의 입구에 있는 간판이 오래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를 보수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완성만 한다면 여기 있는 동안의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작업에 요령이 없는데다가, 선교사님의 방법이 있으실 거라 생각했지만 딱히 방법적인 언급이 없으셔서 우리가 전적으로 혼자 만들어야 했다. 포토샵으로 글씨를 뽑고, 자르고...
힘들게 글씨를 다 파고나니 그럴싸한 간판 모양이 되었다. 나의 글씨 제작, 우연이와 혜민이의 오리기가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글씨를 칠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페인트가 없었다. 선교사님이 페인트를 사오시는 줄 알았지만 흰색은 없어서 결국 우리는 완성을 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소로티에서 신세만 지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지 못했고, 우리가 힘들게 만든 글씨를 마저 완성하고 작게 우리 이름을 남기고도 싶었는데 그럴수가 없었다. 마지막 날이라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조촐한 저녁예배와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는데, 혜민이가 수학을 알려달라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몇 달만에 과외선생님으로 변신해서 수업을 하고, 우연이는 사회 선생님으로 변신해서 수업을 했다. 물질적으로 남긴 것은 없지만 어쨌든 혜민에게 만큼은 뭔갈 남긴거 같았다. 자려고 누운 밤 완성하지 못한 간판이 너무 아쉬워 우연이랑은 계속 그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 다시 이 소로티에 올 기회가 있다면, 와서 의미있는 것을 완성하고 가고 싶다. 오늘의 그 간판은 내가 여기서 다 하지 못한 미완성의 흔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우간다를 떠나는 날이 왔다. 전날 여러 이유로 잠을 자지 못했다. 아마 네 시쯤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 놓고 8시에 나가야 했으므로 7시에 일어났으니 얼추 3시간 정도 잔 셈. 어떻게든 버스에서 잘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먹고 목사님의 차에 몸을 실었다. 짧은 몇 일이었다. 그래서 인지 더 아쉬움이 남는다. 언급은 없었으나 기아대책에서 뵜던 다른 사역자 분의 사역지도 가보고 싶었고, 간판도 마저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한게 없어서 아쉬웠다. 선교사님꼐 신세만 지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뿐이었다. "여행 중에 잘 쉬었으면 된겁니다. 잘 여행하세요 형제들" 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선교사님께 무한한 감사뿐이었다. 홀로 남겨져서 외로워질 혜민이에게도 인사했다. 츤데레 처럼 차갑게 인사하는 혜민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아이임을 알고 있었다. 보냈던 시간이 생각났다. 내가 다시 아프리카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하는 이 인사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니 한국에서든, 이곳 우간다에서든 다시 볼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다. 감사합니다 모두!
P.S.
소로티에서 엔테베는 많이 막힌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막히지는 않았다. 덕분에 공항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공항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던 우연이는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얄밉게 안마의자에 앉은 것을 자랑하는 것은 꿀밤을 때려주고 싶었다(장난). 긴 기다림 끝에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