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6~17일, 여행 148~149 일차, 아디스아바바
우리가 계획했던 에티오피아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원래는 둘 다 같은 날에 공항으로 가 다른 비행기를 탑승할 예정이었으나, 내 항공편이 하루 딜레이가 되는 탓에 나는 아디스아바바에서 하루 더 숙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우연이는 하루 먼저 떠나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40여 일을 함께 지낸 우연이와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아디스아바바에서는 별다른 관광이나 둘러보기는 할 계획은 없었다. 다만 한국에서 부모님을 통해 소개받은 선교사님이 계신 명성병원에 가보는 것을 일정으로 삼기로 했다. 아디스 아바바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졌지만 공항과는 가까운 명성병원은 한국의 대형 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에서 세운 병원이다. 아프리카 내에서 보기 드문 최신 시설이며, 심지어 그마저도 곧 신관이 생겨서 신관만 보면 한국병원 수준으로 건물이 좋고 깨끗하다.
선교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미 재정적으로는 자립하여 거의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우연이의 보충설명에 따르면 통상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통해 세워지는 교회들이 2~3년 이내 자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경우가 상당한데 이 정도 규모의 교회가 자립하여 운영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의대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에티오피아 내의 의료 인프라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여기서 만난 이미경 선교사님은 나와는 막역(이걸 막역이라고 해야 할까)한 희석이의 이모 되시는 분. 이 곳에서는 오지로 파견되어서 의료선교를 하고 계셨다. 쉬운 일이 아니심에도 별거 아니라고 본인을 낮추시는 모습에 역시 대단하시다는 생각 밖엔. 어제까지 단기 선교팀 돌보시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도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주셔서 황송할 따름이었다. 에티오피아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더불어 랄리벨라에서 제대로 모르고 보았던 것 들에 대한 뒷이야기까지 재밌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저녁, 우연이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원래는 같이 공항에 가서 비슷한 시간대에 비행기를 타게 되는 거였지만 딜레이 덕에 우연이만 먼저 보내게 되었다. 1월 3일에 만나서 어느덧 2월 16일이니 45일이었다. 내가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를 여행 중에서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과 함께 여행해 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인지 우연이한테 많이 의지한 것도 있었고, 배운 것도 참 많았었다. '이 눔 시끼, 저 눔 시끼'하며 배웅하는 서로를 돌려보내려고 애쓰는 모습도 어쩌면 같이 지낸 기간이 길었고, 고마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앞으로 그의 남은 여행이 알차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마워, 우연아! Goodbye, Friend!
하루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고 해야 할 것을 정하게 되었다. 바로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한국 전쟁에서 파견군을 보낸 국가라는 것! 그래서 아디스아바바에 한국전쟁 참전기념공원과 참전 용사들이 밀집해서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을 여행 중이던 다른 여행자 HM 씨와 함께 참전용사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참전 용사 마을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고 하여 목적지를 틀어 바로 기념공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 설상가상일까. 5시에 폐장이라는 기념 공원에 16시 50분에 도착한 것. 가드들은 절대 입장이 안된다고 하고... 그러다가 '나 한국 사람인데 10분만 딱 보자 제발.'하니까 갑자기 방긋 웃으며 들어가란다.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던 모양. 그런데 한국인이었어도 들여보내 주는 것도 신기했다. 공원은 단출하였다. 인천에도 인천 상륙작전 기념비가 있는 공원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랄까. 에티오피아는 당시 아프리카 최초의 파병국이었으며, 이례적으로 전투병과를 적극 적으로 파병했던 국가라고 한다. 심지어 그냥 병사도 아닌 왕실 근위병 출신들의 정예병사로. 실제로 강원 지역 최전선에서 활약했으며, 그 공로로 도와 춘천시 측에서도 공로 기념사업 등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전쟁 이후 그들은 모두 본국으로 복귀했다. 뭐 대부분의 참전용사의 말로가 그렇듯, 에티오피아 내에서도 참전용사들의 처우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국가에서 지원을 통해 참전용사 촌을 따로 만들어 두었으니 약 2년 전에 그 마을에 살던 참전용사들께서 많이 돌아가시고 약해지면서 마을 자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공원을 떠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못살고, 더럽고, 낙후되고, 도움이 필요한 나라. 그런 그들이 우리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었다. 막연한 편견 이전에 사실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리고 늦게라도 알았다면 그들을 친구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숙소로 돌아와서 가방을 챙겨 에티오피아 공항으로 향했다. 친구의 나라와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P.S.
이 날 만난 HM 씨는 에티오피아만 졸지에 2달 넘게 계신 여행자였다. 첫 여행지로 유럽을 골랐으나 아프리카로 선회에서 졸지에 오래 있게 됐다는 그녀. '무식해서 용감한 거죠'라고 말하지만 그건 진짜 용기이다. 처음이면 두려운 것들이 많기에 그런 결정은 더욱 어렵다. 이 일기는 내가 잊고 뒤늦게 써서 1개월 뒤에 작성된 건데 아직도 에티오피아를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그녀는 에티오피아의 매력에 완전히 젖어버린 게 아닐까. 가끔은 나도 저런 완전히 녹을 수 있는 장기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