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가고 위축된 등짝을 펼 때가 다가왔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겨울이 정말 고역이다. 날이 많이 풀렸지만 여전히 외출할 때면 양손에 핫팩을 쥐고 나간다. 언제쯤 이 핫팩을 떼낼까. 아직 돌아가는 선풍기 히터도 넣을 생각이 없다. 봄이여 빨리 와라. 제발.
그래도 공기의 온도가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보일러 끄는 시간이 앞당겨졌고, 창문에 붙인 뽁뽁이도 곧 뜯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말이다. 계절의 변화에 나도 뭔가 덩달아 따라 하고 싶어졌다. 거울을 봤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유난히 지겹다. 탄력을 잃어가는 얼굴이 아쉽기만 하지만 어쩔 방도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머리스타일이다. 머리를 기르는 것과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하는데 난 완벽하게 후자인 상태다.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게 화근이다. 살려내자. 그래서 오늘은 오래된 상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미용실에 다녀왔다. 염색은 종종 했지만 머리에 가위를 댄 건 아주 아주 아주 간만이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캐모마일 향기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반겨줬다.
"성함이? 이쪽으로 오세요" 미용사가 웃는 얼굴로 안내했다.
"상한 머리 잘라주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짧지만 확실한 한 마디였다. 머리끈을 풀자 손상된 모발이 우수수 어깨너머로 떨어졌다. 딱 묶인 한 움큼만 싹둑 잘라내면 될 것 같았다.
머리가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됐기에 이해해 달라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미용사는 머리를 들춰보더니 능숙한 솜씨로 가위를 머리에 댔다. 아니 가위가 아니라 레자인가 레이저인가 그런 칼이란다. 쓱쓱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머리를 방치했던 건 단장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가 아니라 변화하고자 마음을 크게 먹었을 때를 기다렸던 것뿐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라는 내부 합의가 생긴 날.
미용사가 쥔 칼이 움직일 때마다 거울 속 내 모습도 조금씩 달라졌다. 길고 헝클어져있던 끝부분이 정리되자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외모에서 머리모양이 차지하는 비율은 최대치로 보면 한 70%는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머리만 바뀌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새로 정리되는 느낌이다.
부드럽게 정리된 머리끝, 깔끔한 라인. 작은 변화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분명 달라졌다. 머리를 자르는 일은 단순한 외모 관리가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정돈하는 의식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행위이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있다. 백수라도 단정하게. 신이 준 피조물을 함부로 방치하거나 구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