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타조 May 12. 2020

돌아서며 눈을 감다

감정 들여다보기

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을 보고 오니, 또 내려 앉는다.
현관 앞에 앉아 고개 숙인 모습을 보이시던 지난 방문이 마음 무겁게 하더니만, 이번 고향길에는 아무 일없이 옥상에 걸터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불안함이 커진다. 아직도 내복을 입었고, 기모 들어간 겨울 바지도 눈에 거슬린다.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그러지 마시라고, 최대한 나긋하게 또 애타게 부탁드려도 그냥 괜찮다고만 한다.
스며드는 어두운 기운이 아버지를 점점 밀어낸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일으키려 온 가족이 고군분투 했다. 벌써 3년이 넘었다.
처음 발병한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사람들이 고개를 떨굴때는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형과 함께 어떻게든 아버지의 시간을 돌리고자 쉼없이 뛰어다녔고, 어머니는 기도하고, 며느리들은 조용한 뒷바라지로 중심을 잡았다.

수술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중환자실 문을 나올 때,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조금만 지나면 예전대로 돌아가리라고 희망하고 기대했고, 그간 흘렸던 눈물과 고단함들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해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일반 병동을 옮긴 다음,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연하장애가 찾아왔다. 코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음료수 크기의 캔에 담겨있는 잘 갈아진 음식을 넣어 식사를 해야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또 감사했다. 다행히 재활 병원에서도 의인이 나타났다. 성품 좋은 물리 치료사는 매일 매일 정성스레 아버지를 전기 치료와 물리 치료했고, 그 덕분에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석 달이 지나니 삼킨 음식에 더이상 기침이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고기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숙제를 마쳤다.
그런데, 또 하나가 찾아왔다.
몸은 호전되어도, 몇 시간 전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 되었다. 다친 부위가 인지와 기억 기능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의사의 말로는 정상생활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어쩌면 회복이 불가능 하거나 더 잘못되면 뇌세포들이 죽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치매에 대한 경고였다.

두려움은 다시 에너지를 충전시켰다. 병원에서 원하는 대로 반년마다 정기적인 인지검사를 받고, 석달마다 의사를 만났다. 결과에 따라 인지 재활과 달라진 약 처방도 받았다. 하루에 세 번 먹는 약, 아침 저녁으로 먹는 약, 자기 전에 먹는 약, 약 종류는 다양해지고 또 복잡해졌다. 떨어져 사는 터라 약 챙기는 수고는 엄마가 잘 해주었고, 아버지도 고단한 시간들을 인내하며 지내왔다. 그럭저럭 지내온게 이제 3년이 되었다.


올림픽의 육상 종목 중에는 허들 경기가 있다. 일반 달리기 트랙에 장애물을 놓고, 그것을 넘으면서 누가 빨리 결승선에 들어가는지 겨루는 시합이다. 남자 110미터 경기는 1미터가 조금 넘는 10개의 허들이 10미터 간격으로 놓여있으니, 마냥 빨리 달리기만 해서는 이길수 없다. 평탄한 트랙을 달리다 장애물이 나오면 걸리지 않고 넘어야 달려오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속도도 속도지만, 리듬을 타는 게 가장 중요한 종목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한 최근의 시간을 보니 마치 허들 경기 같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출발선에 섰고, 경주가 시작되었다. 하나를 넘으면 다른 하나가 찾아왔고, 또 넘으면 다른 것이 있었다. 어떤 때는 낮은 것이, 어떤 때는 부담스런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가시는 아버지를 보니, 또 다시 가늠 안되는 허들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 무거웠다.
이번에는 발목 족쇄처럼 걱정의 족쇄가 매달렸다. 차마 발걸음을 뗄수 없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고, 더 나빠져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몸이 아픈 아버지보다 기억이 사라지는 게 더 아프게 했다. 여태껏 보여준 완벽한 아버지, 그 모습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니 장매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지난 이야기를 했다.
두 살 차이 나는 작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무척이나 자주 대들었다고 했다. 3남 1녀 중 둘째인 아버지는 형(큰아버지)과는 네 살 차이가 나서 아주 깍듯하게 형님 대접을 해주었는데, 정작 본인은 두 살 차이나는 깡다구 있는 동생이 사소한 일에도 싸움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래도 덩치 차이가 있어서, 늘 동생의 패배로 끝이 났다면서.. 
이야기 하면서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있었고, 목소리도 힘이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아는 아버지였다.


끊임없이 허들을 넘는다.
그래도 또 눈앞에는 허들이 있다. 그리고, 정체를 살펴본다.
'이 허들을 넘으면, 또 10미터 앞에 1미터짜리의 허들이 놓여있을까? 아니면 이번이 결승선일까?'
정체를 안다면 삶이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 보이지도 않는다.
110미터를 끝까지 달려도 결승선이 없는 경기일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촘촘하고 더 높은 허들이 놓여 있다면 아는게 무의미하다.
그냥 모른채 열심히 는게 낫다.

고향을 돌아서며 다시 눈을 감는다.
옛 이야기하시는 아버지의 웃는 그 모습만 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 날, 게임만해도 오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