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경기에서 투수와 포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경기의 승부를 '투수놀음'이라 하고, 공 받는 포수에게 '안방마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두 포지션은 경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투수에 대한 평가는 대개 구속과 제구력으로, 둘 다 갖춘 선수는 팀의 에이스가 된다. 그렇다고 투수가 전부는 아니다. 어떤 타자는 강속구에 강하고,어떤 타자는 변화구를 잘 치며, 또 어떤 타자는 정확하게 제구된 강속구마저 잘 노려 치는 선수도 있다. 타자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는데, 이 공부는 포수가 담당한다. 또한, 포수는 투수의 당일 컨디션을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직구가 잘 되는 날, 커브나 슬라이더가 좋은 날, 아니면 마운드의 투수가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있는지, 표정은 어떤지를 살피는 것이다. 경기 상황, 타자 성향, 투수의 컨디션, 이 외에도 수비 포지션 조정, 감독과의 소통 등 포수의 할 일은 더없이 많다.경기장의마님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팀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회사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중요한 기획과제를 팀장 A와 실무자 B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고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둘은 중간 점검차 마주했고 진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를 탓하는 말들이 오갔다. B과장은 팀장이 전달해줘야 할 중요한 메일을 놓쳐서보고서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호소였고, 반면 팀장은 메일을 전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관심이 있었다면, 책임감이 더 있었더라면, 다른 경로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지 않았냐며 서운해했다.
회사 일의 대부분 성과는 리더와 실무자가 합을 이뤄야 만들어진다. 팀장의 역할은 다른 조직의 상황과 더 높은 직책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정보를 전하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일이다. 반면, 실무자는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결과물(상황 파악,원인 분석,해결방안 수립 및 실행, 보고서 작성)을 만들어 내는 게 일반적이다. 두 역할이 잘 수행되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런 관계는 서로의 합이 잘 맞다고 말한다.
사실, 두 사람의 충돌 원인은 관계에 있었다.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하면, 이 논쟁의 어긋난 주장은 '놓친 메일'이 아니라, "평소"에 있었다. 3자가 본 상황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A는 올해 신임 팀장이 되었다. 그런 탓에 실무자로서 업무 스타일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리더로서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상태이다. 더구나 같은 조직의 다섯 개 팀을 조율하는 기획팀장이라 본인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까지 조율해야 하는 고된 팀장이다. 배로 따지면 탑승한 배의 선장으로 선원들에게 할일을 지시하면서 방향을 잡아야 하며, 같은 항로로 운행하도록 다른 배의 선장들에게도 관여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무자 습성이 몸에 배어있었고, 실무에 깊게 파고드는 습성 때문에 놓치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이번일도 그런 종류의 실수였고, 실무자 B는 A팀장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B과장은 빛나는 역할을 원하는 성향이다. 해외 지사에서 장기간 일하며 VIP들과 상대했고, 최근까지도 본부장 스태프로 늘 고위층과 관계를 맺으며 일을 했던 터라, 적절한 칭찬과 보상이 필요한 성향을 가졌다. 올해 들어 B가 담당한 업무는티 나지 않는, 묵묵하고 궂은 역할이 필요한데, 이 업무가 적성이 맞지 않는 터라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몇 번이나 자기 업무에 대한 가치가 낮다고 불평하는 모습을 비췄다. 이런 모습들이 대부분 동료는 알아차렸지만, 팀장은 B의 불안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의 충돌은 평소의 이해도와 관심도와 관련이 있었다.
안타 하나면 역전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 마운드 위에 서있는 투수와 타자 뒤에 있는 포수는 끊임없이 사인을 주고받는다. 몸 쪽 일지 바깥쪽 일지, 변화구로 속일지 직구로 밀어부칠 지를 두고 진지한 의사소통을 한다. 포수가 글러브 사이로 내민 손가락 사인을 투수가 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다. 같은 팀 선수조차 모르는 두 사람만의 비밀언어이다. 간혹 의견이 맞지 않으면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올라가 입을 가려가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야구 종사자가 아닌 아마추어의 추측이지만, 두 선수는 서로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소통하는 과정일 것이다. 마치 오늘, 팀장과 실무자가 논의하는 일처럼 말이다.
야구처럼 모든 소통은 양방향이다. 한쪽이 던지면 다른 한쪽이 받는다. 그전에 어떻게 던지라는 사전 약속도 있다. 이렇게 약속된 소통이 상호간의 신뢰를, 연대를 형성시킨다. 관계와 일의 성공은 "평소" 얼마나 상대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판가름 나지 않을까. 이는 직장도, 친구도, 부부나 아이 관계도 다를 바 없겠다.
오늘 다툰 두 사람의 평소를 근거하면, 아직둘은 이루기 힘든 합이다. 제구가 안 되는 강속구 투수 B과장, 공을 받는 일이 미숙한 포수 A팀장의 합은 미완성이다. 던지기를 잘못하는 건지, 미트질이 미숙한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공은 홈런을 맞거나 포볼이거나 포수 뒤로 빠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공을 던지고 받는 과정이 삐그덕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또,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투수이고 포수로서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유능한 투수와 포수로각자의 실력 발휘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끊임없이 던지고 받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