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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Mar 23. 2020

마음 가득한 하루

털어내야 채워지는 것들

알고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일들이 있다.
그런다고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데도, 되려 거머리 마냥 진득이 붙어 다니면서 마음무겁게 하는 하는데도 말이다.
 



퇴근길에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요. 반찬은 OO슈퍼에서 사고요. 아랫시장은 당분간은 가지 마시소. 운동도 코로나 끝날 때 까지는 가지 말고요. 그래도 나갈 거면 마스크는 꼭 끼고 가시소. 들어오면 손도 꼭 씻고요."

전화 때마다 반복했다. 아들의 잔소리에 엄마는 알았다며 고맙다며 제법 잘 받아주었다.  하지만, 이날 수화기 너머 모양새는 영 신통치가 않다. 저녁 여덟 시에 들려야 할 말투도 아니었고 짜증마저 묻어 있었다.
"와, 뭔 일 있는교?"
아버지가 단감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시장에 가보고, 마트에도 가봤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사과를 먹어야겠다고 한다. 마스크는 한두 개 남았는데, 마트에 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 생각할 게 없었다.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다.


[04:30]

밤에 잠들기 전에 다섯 시 반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한 시간이나 일찍 눈이 떠졌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휴게소를 들러 아침을 먹을 시간을 고려하면 너무 일찍 출발해도 좋을 게 없어 보였다. 눈을 뜬 채 한 시간을 뒤척이다 예정된 알람이 울려서야 일어났다. 소풍 가는 마음도 아닐진대 이리 서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담이 저 아래 있는 모양이었다.
도로가 막히기 전에 얼른 서울을 빠져나가려고 몸을 바삐 움직였다. 막상 출발하고 오른 고속도로는 가는 내내 한산했다. 주말 나들이때에 상습적으로 막히던 외곽순환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어느 지점도 오늘은 제 속도를 내고 간다. 바이러스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나는 고향으로 간다. 오늘은 그러기로 했다.


[10:30]

초인종을 눌렀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누르고도 제법 지나서야 찰칵하며 대문이 열린다. 이윽고 어떻게 벌써 도착했냐면서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거실에는 제 일을 하다만 청소기가 놓여 있고, 다용도실 세탁기는 열심히 모터를 돌리는 중이었다. 아버지를 찾으니 샤워 중이라고 했다. 아들 덕분에 두 사람은 꽤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방으로 시선이 갔다. 도마 위에 손질된 고기와 야채들이 보였다. 오늘 점심은 카레라고 했다. 옛날 동네에 살던 이웃 아주머니가 주셨다는 소고기는 선명한 마블링이 좋아 보였고, 잘 닦아놓은 주홍색 당근도 싱싱해 보였다. 서울서 가지고 온 사과와 고구마를 꺼내니 카레에 넣자고 한다. 근데, 감자는 문제였다. 작년 겨울에 접어들 때, 형이 주말농장서 수확했다며 박스채 가져온 감자가 이제 싹이나 있었다. 그게 들어갈 참이었다. 얼른 슈퍼에 다녀왔다.


[18:50]

서울로 돌아가려고 짐을 다 꾸리고 나서 두 사람과 마주 섰다. 엄마와 포옹을 마치고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근데, 아버지는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올라갈게요 하며 인사말을 하다가 촉촉해진 아버지의 눈이 보였다. 아침에 도착하여 일부러 더 살갑게 안부를 물었을 때는 그리 시큰둥해놓고, 또 하루 종일 무덤덤해놓고선, 막상 올라가려니 보이는 눈빛이 당황스러웠다.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고 팔을 들어 그냥 안았다.

"아버지요, 아들 한번 안아 주소."'

가만히 있던 아버지의 팔이 그제야 반응했다.
마른 몸과 가는 팔로 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나를 안아 주셨겠지만 아쉽게도 남아있는 기억은 없었다. 오늘 포옹은 다를 것 같다.



대학 진학 후 수차례 상경 이별을 해왔다.
대문 앞에서, 기차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니면 오늘처럼 운전석에서 잘 계시라고 인사한 후에 돌아선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가방에는 언제나 무겁게 한 보따리를 챙기고 돌아섰다. 그중에도 오늘 발걸음이 가장 무겁다. 아니, 지난 설에도 그랬고 그전 연말에도 그랬으니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말이 맞겠다.

그 정체를 안다. 챙겨가는 보따리가 아니라, 헤어질 때마다 내 발걸음 위에 올라타는 언젠가는 닥쳐올 두렵고 생각하기 싫은 것에 대한 무게였다.

살다 보면 알고도 모른 채 하고 놔두고 사는 것들이 있다.  조금만 힘을 쓰면, 조금만 부지런하면 마음 편할 그런 일들을 현실을 이유로 놔두고 내버려 둔다. 이번 일도 그랬다. 부모님은 볼 때마다 기력을 점점 잃어가는 게 보였고, 요즘처럼 어수선한 세상에는 어찌 될까 봐 더욱 마음이 갔다. 그러면서 다른 한쪽에는 예전의 건장한 그들을 떠올려 가며 잘 지내겠지, 별일 없겠지 하고 애써 밀어내었다. 사회적 격리가 좋은 핑곗거리였다.

                                                                                                                                                                            새벽잠을 설치고 장기간 운전을 한터라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고단 했다. 그래도 운전대는 되려 홀가분했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길 수도 있을 엄마의 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 하루를 움직였던 덕분에 빚쟁이처럼 들러붙어 있던 마음의 짐을 털어 내었다. 대신 엄마의 반가운 표정과 아버지의 포옹으로 가득 채우고서 돌아왔다.
  
털어냄으로써 채워진다는 진리를 새삼스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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