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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Mar 30. 2020

관계는 감정의 합이다

감정 들여다보기

타인과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사는 일의 큰 고민거리이다.
특히, 기대한 사람에게서 차이를 발견하고 실망을 할 때는 나이를 어도 당황스럽게 한다.


A는 나와 입사 동기이다.
입사한 연도가 같은 해이긴 하지만, 나는 IT 회사로, A는 건설회사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으니 엄밀히 말하면 입사 동기는 아니다. 그냥 같은 해에 시작한 직장 경력이 같은 동료일 뿐이다. 오랜 기간을 다른 곳에서 돌다가 작년에 우리는 구매부서의 기획팀으로 만나게 되었고, 나는 시스템 파트로  A는 기획파트에서 공생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대가 컸다. 이 삭막한 회사 생태계에서 '동기'라는 단어가 힘이 될 거라고 여겼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동기의 따뜻함을, 따스한 배려를 해주던 선배의 빈자리를, 억지스러운 인연을 만들어가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A가 쓴 메일이 도착했다. 시스템 개발을 도와주는 IT 부서가 수신자이고 두 팀의 팀장이 참조자로 들어가 있어서 제법 무거운 메시지였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신기술은 구매 부서에서 솔루션을 찾았고, 관련 업체도 찾아냈으며, H사의 벤치마킹도 작년에 구매부서에서 다녀왔으니, 구매부서가 시작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최근 회사 보고서들에는 IT 부서가 마치 홀로 진행한 것처럼 들리는데, 다른 사람들의 오해가 생기는 중이고, 나중 공로가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까 봐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먼저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A가 불쑥 관여한 것이 당황스러웠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어떤 결과가 어떻게 날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마치 성공한 것처럼 공로를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럽게 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부분은 같이 진행하는 업무를 두고 공적을 따지는 생각이었다. A를 이해하면서도 마이너스 감정은 감출 수 없었다.

선배 C가 떠올랐다.
직장 일이 서툰 초년병 시절, 잘못 만든 프로그램을 배포하는 바람에 실무부서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갑질로 유명한 실무부서 담당자는 나와 선배를 호출하였고 욕설 가득한 비난을 한 바가지 퍼부어댔다. 선배는 연신 죄송하다, 복구하겠다는 말로 사과했고, 그 광경을 보는 나는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섞여 들리는 갑질 언어폭력에 몸을 떨었다. 그날 밤늦게까지 둘은 남아 후유증들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도 실수에 대해서는 한마디 불편한 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의 실수담으로 끝까지 감싸 주었다. 이 사건은 직장 생활을 다르게 만든 계기였다. 무지하거나, 무심하거나, 까칠한 사람들만 존재한다는 일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이후로도 회사든 개인 일이든 모든 것을 선배에게 열었다. 그 후 크고 작은 상황에도 서로에게 호감이 쌓였고, 어떤 문제도 같이 해결해 나갔다. 좋은 감정이 차고 넘치는 관계였다.

우리안의 다양한 감정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중에서

사람 관계를 힘들게 하는 것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이다. 하나의 현상이 다양한 외부 환경에다 여러 사람의 입장이 얽히고설키면 고려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사회생활이 어려운 이유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감정은 너무 단순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이 발생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각자는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고, 그것이 결과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이후 우리 본능이 하는 일은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다. 여러 사람의 입장과 행동 방식, 말투, 표정, 사용한 단어까지 복기하면서 최종적으로 감정의 판결을 내린다. 나와 얼마큼 차이가 나고 또 얼마나 공감하는지에 따라 감정이 일어난다.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감정을 정리하는 일은 한 사람과의 일대일 관계, 즉 나와 특정인 누구를 두고 단순화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이 관계의 핵심이 된다. 또한,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준은 단 한 번의 일이 아니라 여러 번 일어난 '감정의 합'에 근거를 둔다. 그 사람이 만드는 여러 상황들에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두고 내 감정이 여러 번 차곡차곡 쌓여서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좋은 감정은 플러스, 나쁜 감정은 마이너스이다. 수학으로 따지면 플러스 마이너스 부호는 좋고 나쁨(好不好)이며, 절댓값은 감정의 크기가 된다.  
말투 하나, 몸짓 하나가 중요한 이유이다.




A를 이해하기로 했다.
내 마이너스 감정이 C 선배와 쌓았던 플러스 공간을 대신해 주리라며, '동기'라는 말로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의 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대라는 마음은 원하는 감정을, 내 저장소에 채워져야 할 감정을 이미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착각일 수 있다. 플러스가 될 수도 있는 감정을 마이너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동기라는 기대를 뺐으면 어땠을까.

관계를 생각하는 일, 감정을 정리하는 일은 역시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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