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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Apr 05. 2020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좋은 글에 대한 생각

생각에 갇히게 하는 글이 있다. 읽고 있으면 마치 볼모가 된 것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느낌이 다.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이 그런 책이었다. 책의 첫 글은 살구와 엄마의 풀지 못한 관계를 다루는데, 인지 기능이 떨어진 내 어머니가 떠오르며 금세 나를 잡아 버린다. 그러다, 어느새 그 이야기는 감추고 체 게바라와 고통에 대하며, 북극과 아이슬란드의 이야기로 마음대로 옮겨놓는다. 이 산만한 에세이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작가가 엄마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고, 놓치지 않으려 꼭 쥐고 있으려 했다.


글쓰기에 대하여 여러 글을 썼지만 또다시 생각이 오르게 한다. 불과 일 년이 조금 더 된 지난겨울에, 나는 글을 쓰는 낯선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일이 싫어서 책은커녕 영화마저 한편을 끝까지 보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모니터에 앉아 제법 긴 시간 동안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늘 만족하지 못하는 쓰기의 욕구는 꽤 오래 책도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쓰는 즐거움은 오랜 내 습성마저 바꿀 만큼 특별한 무엇이 존재하는  같다.


솔닛의 에세이에서 또 다른 영감을 받으며,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용과 표현에 균형

평소 에세이를 즐기는 편인데, 특히 이 책은 다양한 소재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작가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들을 꺼내오고 연결해 나갈 때, 글이 딱딱 떨어져야 한다는 논리적 전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혼자 하고픈 말을 하듯, 노래하는 듯 속삭여도 읽는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이 책의 매력 중 또 하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쓴 문장으로도 잘 전달하는 표현이다. (번역본이긴 해도, 원서 자체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번역하신 분의 공로 일수도...)


어떤 책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문장이 간결하고 구성이 좋지만, 읽고 나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는 글이 있다. 논리가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공감되지 않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말하는 글도 있다. 이런 부류는 독자에게 감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표현만 좋고 내용이 부족한 글이다.

또 다른 유형은 내용에 비해 표현이 서툰 글이다.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으로 길이가 길어진 글, 구성이 어색하고 논리가 맞지 않은 글, 비문이 자주 등장하거나 맞춤법이 엉망인 글도 거북하다. 마치 똑똑한 사람에게 듣는 재미없는 이야기와 같다.


내용과 표현 어느 쪽이든 균형을 잡지 못하면 좋은 글이 되지 못한다.


따라 하게 만든다 - "나는 그 PD의 삶이 부러웠다"

블로그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MBC 김민식 PD가 쓴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는 몇 가지 개인 경험을 들려주는데, 공대생이 방송국 피디가 되는 과정이나 노조 활동으로 방송국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을 때, 글쓰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하는 내용은 불끈거리게 했다. 그때의  감정은 블로그를 쓰는 일이 마치 새로운 산책로를 찾은 것처럼 벅차올랐었다. 아침에 적당히 시간을 내고 매일 글을 쓴다면, 나도 PD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숨겨진 길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던 것 다. 고백하건데, 솔직히 그 사람이, 그의 생활이 부러워했던 것이다.

두어 달은 노력했다. 아침잠을 참아가며 매일 한편의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지키려 했다. 쉽지 않았다. 쌓아둔 게 없었으니, 아침마다 온몸을 비틀어 대야했고, 덜 익은 글을 올려두곤 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 매일 글을 쓰는 목표가 얼마나 큰 일인지 알게 되었다. 쭉정이 같은 글을 쓰고, 시간에 쫓겨 내 속에 아무것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제서 내려 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얻은 수확은 가볍지 않았다. 기록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자리 잡은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도  덕택일거다.)

결국 김민식 PD는 분명 내게 좋은 글을 ㅈ었다. 그를 따라 할 마음을 생기게 했고, 행동의 변화를 주었던 셈이다.


좋은 글에 대한 두 가지 요건

'좋은 글'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좋다'는 것이 상대적인 감정이기에, 좋은 글도 특정 지을 수 없겠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글'아닌, '누구에게 좋은 글'이라면 생각해 볼만하다.


내가 느낀 좋은 글의 요건은 다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 :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글

그동안 내가 반응한 특별한 책들의 글감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흔히 만나는 사람의 시선으로 쓴 글이 좋았고(허혁 님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꾸준히 반복하며 성장하는 내용은 삶이 도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으며 (김여진 님의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나는 매일 피아노를 칩니다"), 자연과 살아가는 소박한 감정들은 지금을 돌아보게 하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또한, 지식과 지혜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다시 일깨워준 글도 있었다.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와 "책은 도끼다")

김민식 PD의 책을 다시 말하자면, 내가 바라본 것은 글 솜씨가 아니라 그의 일상이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글로 기록하는 일상은 부러웠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삶이었다.  


두 번째 : 잘 읽히는 글

좋은 글은 앞서 말한 내용이 우선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눈에 잘 들어와야 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중에서 -

연설문은 볼때마다 짜릿하다. 다시 봐도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너무나 완벽했던 글이었다.


유시민 님은 굳이 어려운 표현이 아니더라도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워야 좋은 글이라고 다. 그래야 진정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려운 표현은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읽는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나와같은 아마추어들이 할 수 있는 글은 하고 싶은 생각을 붙들어매고 길게 쓰지 않고 쉽게 쓰는 것이다. 글은 소통의 도구이면서 비대면이기에, 지루하지 않도록 정확하고 간결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읽는 이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예의이기도 하겠다.


책에서 솔닛은 글을 실타래에 비유한다. 실타래에서 감긴 을 솔솔 풀어내듯이, 책도 글자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풀어낸 실로 어떤 옷을 만들지는 푸는 사람의 몫이다.
엉키지 않고 잘 풀리면서 다양한 옷을 만드는 실타래처럼, 잘 읽히고 움직이게 하는 글이 분명 좋은 글이겠다.

그런 글을 써보려는 대찬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야 한다.

글 쓰는 일이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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