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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Apr 11. 2020

아이들이 커버렸다

아빠 일은 처음이라

"엄마와 함께 보내온 생활들을 한 번 더 보내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나요. 비록 제가 많이 부족한 건 알지만 앞으로도 노력하는 기범이가 될게요. 남은 시간 동안 잘 보내 보아요."


엄마의 생일날에 예상치 못한 아이의 글 솜씨에 눈물이 스멀스멀 나오려 했다. 아이가 편지를 읽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다가, 겨우겨우 참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작년 10월에 쌍둥이 녀석들은 만 열 살이 되었다. 그때 아빠로 산 10년이란 시간이 묘한 기분으로 다가왔는데,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오늘은 마음이 또 새롭다. 남은 시간 잘 보내 보다니, 아들의 글에 아들 바보가 된다.



생일이라고 지난밤부터 부산스러웠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생일날 하루 종일 끼니는 본인들이 요리해 보겠다며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기특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녀석들에게 엄마의 크기가 짐작이 간다. 손발이 많이 가던 유아시절, 아내는 대상포진과 갑상선을 겪을 만큼 쌍둥이 육아를 힘겹게 해냈다. 그런 큰일이 아니더라도 변함없이 아내는 아이들 곁에서 돌보았고 그 과정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따뜻하고 편안한 정서는 배의 평형수처럼 중심을 잡아준 아내의 공로였다.  아이들이 기특해서, 아이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지난밤 아이들을 불러놓고 작전을 짰다.

"내일 아빠가 엄마와 외출할 테니, 그동안 편지를 쓰고 집을 꾸며보는 게 어떨까?"

동그랗게 뜬 눈들은 반짝였고  반드시 5시 넘어서 들어와야 한다며 신신당부했다. 우리 남자 셋은 그렇게 사전 모의를 해두었다.



"아빠 엄마 이제 들어간다."

쇼핑을 마치고서 아이들에게 약속한 전화를 걸었다. 얘들이 편지를 쓸 거라고 귀띔해 두긴 했지만, 이벤트를 할 거라고는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가 현관문을 열자 숨어있던 아이들이 뛰어나왔고 요란스럽게 생일 축하한다고 외치며 안겼다. 입구에 흩트려 놓은 풍선이 보였고 벽에도 여기저기에도 꽃 모양의 풍선이 붙어있었다. 티브이 위에는 Happy 와 Birthday를 따로 그린 손그림도 걸려있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엄마에게 마음으로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차이에는 '희생'의 유무로 판단할 수 있다. 원하지만 안 해도 그만이면 좋아하는 정도이겠고, 하기 싫어도, 심지어 내게 피해가 있어도 감내하고 할 수 있는 대상이면 그건 사랑의 영역이다. 10년 동안 아빠 역할을 하면서 이 정도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의심될 때가 있었다. 젊은 아빠 시절에는 고개 갸웃거릴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답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일상이 결국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떠올려 보면서 방법을 찾았다. 모자란 잠을 참아가며 매일매일 일터에 나가도, 달갑지 않은 문서 작업과 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일도, 직장 상사의 잔소리와 동료들의 무례를 참는 것도, 선배들의 퇴직 소식에 마음쓰고, 살아남으려 용쓰는 마음 뒤편에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의 일이 이 정도이니, 엄마의 일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사랑이다.




아이들을 보며 사랑도 배워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풍선을 불어 꽃 모양으로 벽에 붙이는 일은 12살 남자아이에게 할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냈다. 그저 엄마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며 준비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일 것이고 엄마에게 배우지 않았을까.

늘 익숙했던 사랑의 방향이 오늘은 반대라서 놀랐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나 커버렸을까하며 또 놀랐다.


남편과 아빠로서 사는 일도 괜찮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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