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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Apr 12. 2020

파더링 (Fathering)

아빠일은 처음이라

사냥에 성공한 사내는 멧돼지를 들쳐업고 마을로 돌아왔다. 한 소년이 사내를 보자마자 쏜살처럼 달려가서 사내에게 안겼다. 잡아 온 사냥감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구경 온 다른 친구들에게 우쭐거리며 자랑한다. 마음속에는 나도 얼른 자라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냥꾼이 되리라 다짐했다.


수렵 시대 한 장면을 상상해 봤지만, 지금도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오지에는 이런 광경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아버지도 사냥을 나간다.

부족장(상사)이 사냥감(미션)을 정하면, 오늘 출정할 사냥꾼들은 한자리에 모여 계획을 짠다(회의). 이 사냥감은 대개 어디서 돌아다니고 어떤 약점을 공략해야 하는지 자신들의 경험을 말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방법을 공유한다 (자료수집). 아니면, 그 사냥감을 잘 잡는 다른 사냥꾼을 찾아가 조언을 들어보기도 한다 (컨설팅). 예전에 포획에 성공했던 방식이나 실패했던 사례도 중요하다(Lessons Learned). 조사가 끝나면, 이제 활과 화상, 창, 그물 등 사냥에 필요한 장비들을 점검해야 한다(작업환경). 이 모든 것들이 준비되면 이제야 계획된 대로 사냥을 나선다(제품, 기획물, 보고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도 적지 않다. 결과가 어쨌든 심신은 만신창이가 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돌아왔어도, 피곤한 심신은 감출 수가 없다. 말문은 닫히고 온몸이 쑤셔 드러눕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이 달려와 그날 사냥일을 물어보지만, 그 눈높이로 맞추기란 어렵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마음과 다르게 무뚝뚝해지고 돌아 누워 잠을 청할 뿐이다. 아이의 눈에는 이런 아버지가 항상 피곤하고 불친절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다.


윌 글레넌 , 즐거운 상상, 2005년 발매


파더링(Fathering) : 아버지 노릇하기, 아버지로서 자녀 돌보기


책 <Fathering>은 현대에 '아버지 노릇하기'가 왜 어려운지를 말했다. 수렵 시대 비해 현대의 아버지 상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렵시대의 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듣고, 기억하면서 몸에 익히면 되었다.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따라 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마침내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아버지가 할 일도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는 사냥 기술의 모든 것을 알려주면서 격려하면 되었다. 그가 아는 방식 또한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었고, 그것에다 자신이 체득한 것들을 더하여 아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보살펴주면 끝이었다. 이 노하우들은 어른이 되는데 필요한 최고의 노하우였으며, 이 정도면 남자 어른으로써 부족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현시대의 아버지는 복잡하다. 어른이 되는 방법이, 선호하는 어른 상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에 따라 다르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른의 역할이 다르다. 심지어, 자신이 어릴 때 배운 것들이 지금 사는 일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 있으며, 새로 배운 것조차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게 생각되기도 하다. 선호받는 어른 상이 다르기에 어떤 것을 알려주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더 발전될 번역 프로그램이 유창한 영어로 대신 말해줄 세상이 올 수 있고, 인공지능이 재판을 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뉴스에서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예측된다 하더라도, 가르쳐 줄 것이 별로 없다. 절실하게 알려주고 싶어도 아는 것이 없으며, 마음만 졸이고 걱정할 뿐이다. 현시대의 파더링이 어려운 이유이다.




유튜브와 핸드폰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할 말이 목구멍까지 찼다가 이내 가라앉힌다. 내 유년시절을 회상해서, 밖에 나가 비석 치기를 하라고 딱지치기를 하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학습지를 풀어라,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기에도 아버지로서 무책임한 말이다.  

떠오르는 지혜의 말은 있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을 알려주어라!”

이 또한, 쉽지 않다. 어떤 물고기를 잡아야 할지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다만, 이 말을 곱씹어 본다면, 그래서 지금 시대 아버지가  알려줄 것이 있다면, 방법이 아니라 자세가 아닐까.
어떤 상황에도 용기 있게 대하는 자세,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
지금에 집중할 줄 아는 자세,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래저래 좋은 아버지 노릇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멧돼지만 잘 잡아도 존경받았던 그 시절 아버지가 부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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