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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Feb 23. 2021

게임짱 아저씨

아빠 일은 처음이라

퇴근하는 길이었다. 2월의 이상 기온이라는 말처럼 낮에 제법 따끈한 햇살이 비쳤지만, 저녁이 되자 어김없이 겨울의 매서움이 묻어 있었다. 마을버스에 내려 아파트의 조경 길을 걷는 동안 목덜미를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여전히 발걸음을 총총거리게 만들었다. 얼른 집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안에는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 명은 같은 층 옆집의 자전거를 기똥차게 잘 타는 12살 녀석이고, 다른 두 명은 14층에 있는 개구쟁이 쌍둥이였다. 이 녀석들은 오가며 종종 눈에 띄어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살갑게 인사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특히, 14층의 쌍둥이 녀석들은 우리 집의 쌍둥이들과는 그리 좋지 않은 관계였다. 늘 순둥이처럼 할 말 못 하고 당하는 우리 아이들에 비해, 14층 쌍둥이들은 둘이 똘똘 뭉쳐 다니면서, 짓궂은 장난을 치고 또래들을 윽박지르는 장면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쌍둥이들과 놀다가 꼬박 대든 적이 있었는데, 사이좋게 놀았으면 좋겠다고 타일렀을 때, 찬바람이 쌩 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12층 우리 집 쌍둥이들은 14층 쌍둥이들과 놀지 않겠다고 했다.


보아하니 세 녀석들을 모두 동갑이었다. 뭐라도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같이 놀다 왔구나' 하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슬쩍 눈길을 피하던 녀석 중 한 녀석의 핸드폰에 익숙한 화면이 보였다. 최근 우리 아이들도 빠져있던 그 게임이었다.

"너도 브롤 스타즈 하나보다."

"네. 근데, 저는 6개월 정도 안 했다가 오랜만에 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게임 이야기에 아이의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그 표정이 귀여워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 그럼 너는 요즘 새로 나온 캐릭터들은 잘 모르겠네. 최근에 에드거도 있고 러프스 대령도 새로 나왔는데..."

세 명이 동시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조그마한 녀석들의 올려다보는 눈빛이 재미있었다.

"우와, 아저씨도 브롤 하시나요? 그러면, 아저씨 트로피가 얼마나 돼요?"

"음. 아저씨는 만 칠천 정도 될걸?"

"우와~~"

이구동성 감탄이 쏟아졌다.


내가 이 게임을 한지는 1년이 넘었다. 아이들의 손에 핸드폰이 넘겨주면서,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게임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핸드폰과 게임에 대하여는 육아하는 아빠로서 항상 걱정이지만, 요즘 아이들 대부분 그렇다고 하니, 대세를 따른다는 위안으로 일정한 룰을 주고 자율적으로 맡기는 편이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의 제한은 밖에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전자 오락실을 좋아했던 내 유년시절을 감안해도 사내아이들이 게임 좋아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육아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부모도 같이 게임을 즐기면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임들은 가급적 관심을 가져주려고 하며 또 같이 노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친구들이 불렀다며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다. 그 시간에 혼자 산책을 돌던 나는 우연히 아파트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들과 친구들을 발견했다. 뛰어놀고 있을 줄로만 녀석들을 보며 뭐하느냐 물었더니, 핸드폰 게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은 친구들과 입을 맞췄는지, 요즘 이 게임이 대세라며 상세히 게임 설명을 했다. 또 녀석들은 요즘 친구들 만나면 이렇게 논다고도 했다. 실로 격세지감이었다. 자고로 사내아이이라면 축구공으로 뒹굴던가,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던가, 하다못해 몸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게 내가 아는 놀이인데, 아파트 구석에 쭈그려 핸드폰 게임을 하는 녀석들이란. 세상 많이 바뀌었다 싶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얼마나 재밌길래 그러나 싶어서, 나도 핸드폰에 설치하고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나도 금세 재미가 들렸다. 요즘 게임하고는 다르게 룰도 쉬웠고 조작법도 단순해서 쉽게 할 수 있거니와 귀여운 캐릭터를 모으는 재미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출퇴근 길에, 혹은 집에 있는 잠시의 자투리 시간에는 게임을 했고, 아이들과도 함께하는 시간에도 제법 자주 같이 즐겼다. 그게 어느새 일 년이 넘었고, 현재는 엘리베이터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아저씨가 된 것이다.


녀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평소에는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서, 인사하는 법도, 눈길 한 번도 주지 않던 녀석들이, 오늘은 옆집 아저씨를 마치 연예인 마냥 경외의 시선을 보낸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데, 아이들의 인사가 들렸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거참... 기분이 묘하다. 열두살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고 우쭐해진 마흔일곱 살 게임짱 아저씨. 이게 기뻐해야 할일인지, 부끄러워 할 일인지, 그래도 아이들의 좋은 인사를 받았으니, 나도 화답했다.

"그래, 너희들도 열심히 해봐."

얼떨결의 더 웃긴 대답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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