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번째 이야기 [2024. 3. 4. 월]
아침에 눈을 뜨니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서 일어나서 휴일을 맞으라고. 부지런한 친구는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는지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 뭐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봄맞이 대청소 중이란다.
친구는 책상을 들였는데 그 김에 차근차근 집안을 정리하고 있다. 혹시나 쓸지 몰라 그냥 두었던 물건을 미련 없이 버리기도 했단다. 말이 정리지 그냥 다 버리고 있다고. 친구의 말을 듣고 내 화장대를 보니 너저분한 것들이 많았다. 물건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나니 정작 내가 쓸 자리가 부족했다. 쓰레기봉투를 하나 들고 와 오랫동안 안 쓴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 쓴 줄 알면서도 씻어서 분리배출하기 귀찮아 한 곳에 둔 공병도 말끔하게 씻어 내놓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화장대에 여백이 생겼다. 하기 전에는 분명 귀찮았는데 하고 나니 엄청 뿌듯했다. 이제 재활용품만 내놓으면 정리가 끝난다.
정리를 한 군데 하고 나니 다른 곳도 눈에 띈다. 맞지 않으면서도 아까워 못 버리고 있는 옷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새 옷도 여러 벌이다. 살이 찔지 모르고 미리 사뒀는데 살이 쪄서 입지 못한 옷들. 아쉬운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몇 년째 옷장에서 조용히 낡아가고 있다. 어서 헌 옷정리함에 넣어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구라도 입어주어야 옷의 입장에서는 쓰임을 다 하는 걸 테니. 옛날에는 치마와 원피스를 주로 입은 모양이다. 못 입는 청바지의 수보다 못 입는 치마의 개수가 훨씬 많다. 정말 아끼는 치마 몇 개만 두고 다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옷 정리는 화장품과 달라서 결심이 필요하다. 이 마음이 며칠 유지된다면 그때 내다 놓을 생각이다.
친구의 전화 덕분에 휴일을 정리정돈으로 시작했더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정리한 것 빼고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묵힌 피로룰 풀기라고 하듯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잠을 자거나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나는 역시 집순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아마 친구는 잽싸게 정리하고 반려견을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겠지. 언니는 요즘 꽃꽂이 수업을 한다니 꽃꽂이를 하러 갈 테고. 나는 누워서 책을 읽거나 햇살이 너무 좋으면 도서관 정도만 다녀오겠지. 나에겐 너무 먼 도서관은 막상 가면 정말 좋은데, 가기까지가 쉽지 않다. 매번 늦게 간 탓에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는 항상 앉지 못한다. 휴일에는 조금 바삐 움직여 바깥 풍경을 보며 커피 한잔 하면 좋겠다. 늘 그렇듯 휴일 하루를 계획하는 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