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2024. 4. 1. 월]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외갓집에 갔다.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주말 농장처럼 고구마, 상추, 고추 등을 심어서 따 먹었다. 엄마아빠는 외갓집에 가면 농사일을 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는 밭으로 가셨다. 그 곁에서 풀을 뽑고 놀았다. 간간히 할아버지가 따 주시는 과일을 먹으며 놀았다. 감, 산딸기, 살구, 복숭아 등 계절에 따라 손에 쥐어지는 과일도 달랐다. 이 모든 과일을 심었던 건 아니고 손녀가 왔으니 이웃들이 나눠준 걸 내어주셨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셨는데, 나를 보면 꼭 번쩍 안아 올려주셨다. 그럴 때마다 키가 쑥쑥 커진 기분이 들어 “할아버지 한 번 더 해주세요”라고 했지만, 언제나 엄마아빠의 “그만해, 할아버지 힘들어”라는 말과 함께 자그마한 키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못 말리는 말괄량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난을 쳤는데, 한 번은 엄마아빠를 따라 잡초를 뽑는다고 할아버지께서 힘들게 심어놓은 꽃모종을 죄 뽑았다고 한다. ‘꽃이 피면 나와 언니 그리고 가족과 함께 봐야지’했던 할아버지 계획은 손녀딸의 손에 한순간에 뽑혀나갔다. 허허 혀를 차리면서도 혼내지 않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 광경을 보고 “어쩐지 조용하더라”라고 말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녀린 새싹은 내 손에 다 뽑혀나갔지만, 우리는 몇 달 뒤 그 자리에 어여쁘게 핀 작약을 보았다. 속상해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외삼촌이 다 자란 꽃을 구해 옮겨 심으셨단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흐드러진 작약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쩐지 작약보다 풍선처럼 부푼 엄마의 머리카락에 눈이 간다. 엄마는 파마를 좋아했나 보다. 그 시절 엄마 머리는 항상 아빠의 두 배다. 둥실둥실 엄마머리.
외갓집에서는 마음껏 놀았다. 사고를 쳐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혼내지 않았고, 다 그러면서 큰다고 나의 엉덩이를 토닥여주셨다.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뒤에 숨어서 혼내려는 아빠를 얄밉게 쳐다보았다. 할아버지께 혼날 때는 식사 예절을 지키지 않을 때다. 한 번은 저녁 먹는 시간과 TV 만화영화 시간이 겹쳤다. 내가 앉은자리는 아빠에게 가려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화면이 안 보인다고 징징거리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밥 다 먹고 봐”라고 하셨지만, 만화에 정신이 팔린 나는 다시 화면이 안 보인다고 짜증을 냈고 결국 밥 먹다 말고 쫓겨났다. 저녁 식사를 다 마친 후 할아버지가 내 곁으로 와 “밥 잘 먹을 거야”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식탁을 보니 내 몫의 고기반찬이 남겨져 있었다.
한 번 혼이 나면 따끔하게 혼나서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웠다. 할아버지에게 혼난 날이면 슬금슬금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날 좋은 날 마당에서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는데 의자가 두 개밖에 없었다. 언니는 의자에 혼자 앉고 나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혀졌다. 나도 언니처럼 의자에 앉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어김없이 엄마에게 혼났다. 그런데 철없는 나는 할아버지가 내 의자를 뺏었다고 생각했고, 할아버지가 사 준 과자를 먹으며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할아버지의 의자에 앉아 담벼락 너머 보이는 할아버지를 몰래 쳐다보며 태평하게 과자를 먹었다. 외갓집은 내가 뭘 해도 예쁨 받는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혼이 나더라도 주말이면 신나게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