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은 맑음
주중에 휴일이 껴있을 때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무언가를 하게 된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운동 후 산책도 ‘며칠 후면 쉬니까’라는 생각에 길을 나선다. 오늘처럼 쾌청한 날에는 푸른 하늘과 초록이 한껏 물든 나뭇잎을 볼 수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가지들. 초록의 한가운데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는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걷느라 달아오른 몸을 한 김 식혀준다.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시간을 잊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출근도 마음속 걱정도 잠시 잊는다. 그저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치며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한다. 잠시라도 자연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둘기 한 마리가 거침없이 달려든다.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지만, 사람을 봐도 꼼짝 않는 비둘기는 어쩐지 무섭다.
고등학교 때인가 수행평가로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외웠다. 선생님은 시 하나쯤은 외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며 시 외우기를 수행평가로 내주셨는데, 기대와 달리 시를 외웠던 기억만 남았다. 시도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갈 곳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문학적으로 바라볼 때는 안타깝지만 내게로 날아오는 건 어쩔 수 없이 싫다.
김광섭 시인도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을 보고 <성북동 비둘기>를 지었나. 갑자기 날아든 비둘기 덕분에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바람에 이끌려 나간 산책길에서 추억과 마주했다. 비둘기는 여전히 달갑지 않지만, 물어다 준 추억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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