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은 분주함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L을 보며 생각했다. L은 상냥하거나 친절한 성품은 아니지만, 예의 바른 사람이다. 그런데 마감을 앞둔 그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오며 가며 하던 목례도 사라지고, 일에만 파묻혔다. 식사도 거른 채 일하는 걸 보니 많이 바쁜가 보다. 아니면 쫓기는 마음에 밥이 넘어가지 않을지도.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는지, 일정을 확인할 겸 말을 걸었더니 한참 동안 멍하니 보기만 한다. 버퍼링에 걸린 컴퓨터처럼 나를 응시했다.
L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언제쯤 일을 끝낼 수 있는지 묻는 게 미안해졌지만, 일은 일니까. 한참만에 대답을 내놓은 L은 메신저로 “말씀드릴게요”라고 했다. ‘메신저에 답이 없으셔서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네”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채근이 아닌 쉼이었기에.
이리저리 분주한 L을 보니 예전 직장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업무 리스트를 만들어도 돌아서면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때. 어느 순간 업무 리스트를 만들 여유도 사라져 이리저리 떠밀린 채로 일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주로 했던 생각은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잠들기 전이면 못다 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혹시 L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은 그랬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시기가 오나 보다. 부디 L이 업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히 잘 버티기를, 그래서 조금 지난 후에는 예전처럼 여유를 되찾길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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