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튀기는 눈치 싸움

‘일을 줄여달라는 자’와 ‘일을 줄여주지 못하겠다는 자’

by 박수민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말이 좋았다. 그 말에 기대어 며칠을 보냈다. 일이 힘들어도 ‘곧 업무조정에 들어갈 테니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업무조정에 대한 기대가 ‘혹시 팀장님이 잊으셨나’하는 불안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팀장님이 나를 부를 때면 ‘지금 이야기하실 건가 보다’하며 괜히 긴장하곤 했다.


한번 싹튼 불안은 점점 커지더니 조바심마저 느끼게 했다. ‘도대체 언제 이야기하실 거지?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는 거 아냐?’하는 원망 섞인 마음이 차츰차츰 쌓이기 시작할 때쯤, 팀장님은 나를 불렀다. “과장님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하고는 시원스레 걷는 그의 걸음걸이에서 ‘명쾌한 답을 찾았구나’ 하며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라 회의실로 향했다.

일하는 거 좀 나아졌어요?

회의실에 마주 앉아 팀장님이 꺼낸 첫마디에 기대감 대신 의문이 피어올랐다. ‘나아졌다니’ 엥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누른 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니 지난번에 업무가 힘들다고 하셔서 적응이 좀 됐나 해서요. 그동안 다른 업무 지시가 없었으니 나아지셨는지 묻는 거예요”라는 팀장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의 분노 버튼이 꾹 눌러졌다.
“팀장님! 업무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일이 많아요. 다른 일을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한데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아요”라고 나는 호소했다. 팀장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지금 팀원들 전체가 바빠요. 며칠 과장님이 다른 업무를 하지 않는 동안 팀원들은 더 바빴고요”라며 되레 나를 질책하는 말투였다.


며칠을 기다렸는데 고작 돌아오는 게 질책이라니.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업무 가중도를 적극 어필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 수와 촉박한 일정 그리고 팀장님이 읊은 팀원들의 업무를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다른 팀원들의 업무는 가지 수는 많아도 단기 업무가 대부분이었고, 나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처음 진행하게 된 프로젝트(첫 프로젝트라는 건 그만큼 클라이언트와의 잦은 전화 업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변수가 많다는 것을 뜻했다)를 비롯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동안 진행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마감은 모두 같은 달이었다.


물렁해 보이던 나의 뜨거운 반응에 팀장님은 당황했는지 “다른 팀원들은 과장님 오시기 전에 엄청 고생했어요”라는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생했으니 이제 내 차례’라는 건가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 퍼졌다.
나는 분노와 당혹감에 말을 잃었고, 팀장님은 당황스러움에 말을 잃었는지 팀원들의 업무 일정표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일을 줄여달라는 자와 일을 줄여주지 못하겠다는 자의 눈치 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내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거라 판단했는지 팀장님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우선 다른 팀원들 프로젝트 후속 작업 중이니까 손이 비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라고 이만 싸움을 끝나자는 사인을 보냈다. ‘후속작업 중일 때가 가장 한가할 때 아닌가?’하는 의문이 돋아났지만, 여기서 더 버틸 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때 꼭 업무 조정해 주세요”라며 거듭 강조한 끝에 팀장님과의 눈치 싸움을 끝냈다.




어기적 어기적 걷는 팀장님 뒤를 터덜터덜 뒤따라 걸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팀원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모두 제시간에 일을 끝내려고 불꽃 타자를 쳐가며 업무 중이었다. 다들 이렇게 바쁜데, ‘내가 괜한 엄살 부린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듯 갑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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