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숨긴 수박 한 덩이

by 박수민

우리 아빠는 장난꾸러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난을 치신다. 전화를 걸면 아빠는 “누구세요?”라며 반갑게 받아 든 막내딸의 음성을 모른 체하신다. 그리고는 “*** 씨 막내딸 박수민입니다”라고 하면, “아 익숙한 이름인데 누군지 모르겠네”라시는 음성에서 웃음을 참는 게 느껴진다.


아빠가 장난을 치는 날에는 한 차례 상황극을 끝낸 후에야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아빠가 장난을 친다는 건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다. 무뚝뚝한 성격에 말수가 없는 아빠는 장난칠 때만큼은 70세 소년이 되어 크고 맑은 눈이 초롱초롱해지신다. 특히 엄마를 놀릴 때 최선을 다한다. 아빠와 달리 엄마는 장난을 잘 치지 않는다. 게다가 함께 사시는 40여 년의 세월 동안 아빠에게 당한 게 많아 웬만한 장난에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엄마에게 거짓말을 할 때면 앞뒤 상황은 물론 표정까지 연습하는 아빠다.


엄마 아빠가 사는 동네에는 일요일이면 ‘번개시장’이 열린다. 이른 아침 시간에 반짝 열리는 장이다. 시장 구경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부러 번개시장을 찾으신다. 어느 날은 들고 간 배낭 가득 물건을 넣어오시고 어느 날은 양파 한 망을 사시고는 자주 가는 콩국집에 들러 도넛을 동동 띄어주는 콩국을 드시고 오신다. 엄마 아빠네 가면 일요일은 꼭 번개시장에 들러 반려인과 나는 과일을 엄마 아빠는 그때그때 필요하신 걸 사신다.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는 갓 튀겨낸 어묵과 도넛의 유혹에 자주 넘어가곤 했는데 요즘에는 못 본 척 지나가기도 한다. 매번 함께 시장에 가곤 했는데 엄마가 다리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 주말에는 아빠와 반려인만 시장엘 갔다. 나는 왜 가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마 엄마 핑계로 이불속에 더 누워있었던 것 같다.


그날 엄마는 아빠에게 이것저것 사달라고 부탁하며, 집에서 먹을 수박 한 통, 아이들 가져갈 수박 한 통, 농막에서 먹을 수박 한 통 총 수박 세 통을 사 오라고 하셨다. ‘와 무겁겠는데’라고 생각하며 아빠와 반려인을 배웅했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을 때 아빠와 반려인은 집에 돌아왔다. 아빠의 첫마디 “아무리 찾아봐도 수박은 이거 하나뿐이더라. 장마 오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과일을 많이 사 갔나 봐”라고 하셨다. 장마가 와서 과일이 싱거워지기 전 과일을 사 간 탓에 수박을 한 덩이밖에 사지 못하셨다는 말을 나와 엄마는 믿었다. 그런데 수박을 사 오지 못한 아빠의 표정이 수상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은듯해 보였다.

반려인에게 물었더니 “수박 두 통은 차에 있어요. 아버님이 어머님껜 비밀이라고 하셨어요”라고 한다. 역시 아빠의 장난이었다. 농막에 가서야 수박이 두 통이 더 있는 걸 본 엄마가 “수박 못 샀다면서?”하고 묻자 아빠는 “좀 전에 내가 사뒀지”라며 웃으신다. 그러고는 엄마를 완벽하게 속였다는 사실에 기뻐하신다. “치”라고 하는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두 분을 보면서 왈칵 행복을 느꼈다.


아빠의 장난은 여전하고, 엄마 역시 아빠의 장난들에 속지 않기 위해 다분히 애쓰신다. 곁에서 그걸 보고 있자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부디 엄마아빠의 평범한 하루들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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