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구이를 잘 먹지만, 좀처럼 찾아먹을 일이 없다. 어릴 때는 생선구이가 식탁에 자주 올라왔는데 이름이 뭔지도 모르면서 밥 위에 놓인 생선살을 숟가락으로 떠서 잘도 먹었었다. 그 후로 학교 급식에 생선구이가 나오면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려고 해도 엄마 아빠가 발라주는 것만큼 커다란 살점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린 생선살은 금세 부스러기가 되고 만다. 몇 번 휘적거리다가 다른 반찬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자취를 하면서는 점점 더 생선을 먹을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도 일 년에 두 번 언니 생일과 내 생일이면 생일상에 생선도 함께 구워져서 식탁에 차려졌다. 엄마 아빠가 보낸 생일상이 도착하면 서로의 생일에 맞춰 상을 차려주었다. 그날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엄마 반찬을 먹으며 마음의 온기를 채우고 있었다. 둘 다 생선살을 잘 발라먹지 못해서 살은 바스러졌지만 가시만 남겨놓고 야무지게 살을 발라먹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그동안 우리 손으로 생선살을 발라먹은 적이 없다는 것을. 생선구이를 하면 엄마든 아빠든 생선살을 살살 발라내어 우리 밥 위에 소복이 쌓아주면 그저 숟가락으로 떠먹기만 했었다. 그러니 다 자란 어른이 된 다음에도 생선살을 잘 발라먹지 못하는 거였다.
꽤 독립적으로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서툰 것들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해주었구나 싶다. 생선구이를 먹는 날을 떠올리면 엄마 아빠의 손은 분주하셨다. 손과 젓가락을 사용해서 생선살을 발라내어 우리가 밥을 다 먹기 전에 밥 위에 올려주셨다. 우리 밥 위에 생선살이 충분해지고 나서야 당신들은 얼마 남지 않는 생선살을 떠서 식사를 하셨다. 한 번은 서투른 솜씨지만 생선이 잘 발라져서 엄마 아빠 밥 위에 생선살을 올려드렸더니 “수민이가 발라준 생선살을 다 먹어보네”라고 하셔서 괜히 울컥했다.
반려인과 처음으로 생선구이를 먹던 날 내심 놀랐다. 나보다 생선살을 발라먹지 못하다니. 쌓인 생선가시에 살점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런데도 바스러진 생선살을 밥 위에 열심히 올려주던 그였다. 속으로 ‘차라리 내가 발라주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열심인 그의 젓가락질에 그저 묵묵히 밥을 떠먹었다. 서투른 그는 어느덧 생선살을 아주 잘 발라내는 사람이 되어 이제 생선을 먹을 때면 토실한 생선살을 밥 위에 척척 올려준다. 나는 여전히 생선살을 발라내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손을 빌려 생선구이를 먹는다. 밥 위에 놓인 생선살을 먹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