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아니지만, 떼어놓을 수 없는

by 박수민

중독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본다. 여러 사전적 의미 중에서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라는 뜻에 눈길이 간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중독에 빠져본 적 없는 나는 어쩌면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게 없으니 중독과는 무관한 삶을 살 수밖에. 흔히 말하는 덕질조차 해본 적 없는 나는 어느 하나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몰래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부끄럽고 쑥스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는 사람이 내는 눈빛을, 에너지를 좋아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맥주를 마셔야 할까?

맥주를 좋아해서 급기야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지인이 있다. 맥주를 만드느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이렇게까지 해서 맥주를 마셔야 할까? 싶다 가도 잘 익은 맥주를 마시는 날이면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어’라는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내게도 꽤 집착하는 것은 있다. ‘좋아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경계에 놓여 있지만 어딜 가든 음악은 빠지지 않고 듣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음악 앱을 켜고 어떤 음악을 들을지 신중하게 결정한다. 오늘의 날씨, 일정, 컨디션 등을 고려해서 음악을 고르고 또 고른다. 어떤 때는 한 음악만 듣는데, 가사를 듣고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어떤 마음으로 노래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차곡차곡 쌓아 뒀다가 그 음악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나 감정이 들 때면 슬쩍 꺼내어 듣는다.


오랫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 머무는 이는 ‘이지형’과 ‘검정치마’. 토이의 <뜨거운 안녕> 객원보컬로 유명한 이지형은 언제고 들어도 다시 반하게 되는 목소리를 가졌다(이건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검정치마의 ‘TEAM BABY’ 앨범은 조용히 무언가를 끄적일 때면 슬쩍 틀어놓는다. 검정치마의 재능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뮤지션인데 가사를 ‘참 잘 쓰네’라고 생각하며 가사를 되새기며 듣곤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잘 쓰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며 타닥타닥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옮겨보게 되는 것이다.


내게 음악은 감정의 증폭제이자 마음의 안정제이다. 집중 안 되고 마음이 달떴을 때라도 ‘노동요’를 트는 순간, 억지로라도 일하게 된다. 어떤 주문과도 같달까. 하나 둘 셋 ‘자, 노래를 틀었으니 이제 일을 해보자’ 하는 나만의 루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도 음악을 튼다. 아침 일찍 일어날 때나 화장을 할 때, 심지어 물소리에 묻히지만 설거지를 할 때도 켜 둔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으니 조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보자’ 하는 나를 위한 위로가 담겼다. 노래에 기대어해야 할 일을 착착 해내다 보면 하루 끝에는 뿌듯함이 마음 가득 채워진다. 그 뿌듯함을 다시 느끼기 위해 내일의 나는 또 플레이리스트를 찬찬히 훑어보겠지. 지금도 내 귓가에 검정치마의 <한시 오분>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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