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by 박수민

그럴 때가 있다. 처음에는 이상하던 것이 어느 순간 익숙해져 그것이 잘못된 건지 모르고 넘어갈 때 말이다.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 보면 나도 거기에 빠져들어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나는 인사 외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우리 팀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무실을 서로의 키보드 소리로 가득 메우던 게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점점 익숙해져 나도 마치 도서관에 온 것처럼 조용히 자리에 앉아 내 할 일만 하던 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손 내밀어준 몇몇 동료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입을 꾹 닫은 채 지냈을지 모른다.


팀 내에서 대화가 없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기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기획팀은 항상 바쁘고 각자 할 일이 많으므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같이 모여 수다 떨 시간에 자기 책상에 쌓인 일을 하나 더 처리하는 게 분명 효율적이었다. 마감을 넘기지 않고 제날짜에 일을 처리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모든 일이 ‘효율’적으로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하물며 기계도 잘 돌아가도록 기름칠을 하는데 우리에게도 모종의 ‘기름칠’이 필요했다.


각자의 일만 하니까 팀원들에 대한 이해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원은 어떤 강점이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들 뚫어져라 모니터만 바라보며 그날그날 자신이 맡은 일만 해냈기에 나도 그저 조용히 앉아 내 할 일을 해낼 뿐이었다. 이제 팀원들과 함께 맡은 프로젝트를 의논하고 바쁠 때는 서로의 일을 덜어주는 것은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회사 집만 오가다 모처럼 서울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를 만났다. 서울에서 보던 사람들을 부산에서 본다니 설렜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우리는 해를 거치며 동료를 넘어 친한 사이가 되었다. 한때 나의 상사였던 그녀는 기꺼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또 다른 동료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모인 우리 셋은 어떻게 지내는지 한참을 이야기했고, 밤이 깊어지면서 이야기도 점점 무르익었다. 유난히 나의 회사 이야기만 나오면 정적이 이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헤어지기 전 한때 나의 상사였던 H가 이렇게 말했다.

“각자 상황이 있어서 회사를 관두라고 말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한번 잘 생각해봐. 내가 보기엔 너 지금 좀 위태로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 너와 지금의 너는 너무 달라.”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잘 아는 그녀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나를 오랫동안 봐왔고 나를 아끼는 사람의 말이라 한동안 마음에 맺혔지만, 바쁜 생활에 묻혀 어느새 잊어갔다.



과장님이면 월급도 더 받을 텐데 왜 자꾸 일을 쳐내요?



어느 날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을 그대로 받다가는 내가 쓰러질 것만 같아서 “죄송해요. 팀장님, 지금은 도저히 시간이 안 돼요”라고 말하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가던 때였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팀원이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지만, 그땐 내 일이 급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없는 자리에서 한 팀원이 “과장이면 월급도 더 받을 텐데 왜 자꾸 일을 쳐내요?”라고 말했다는 것. 물론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듣고 있던 다른 팀원들이 내가 얼마나 일이 많은지 몇 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지 이야기해줬지만, 월급을 더 받으니 당연하다는 논리 앞에서 그 말은 그저 허공을 떠돌 뿐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직하면서 연봉이 깎인 나로서는 받은 만큼 일해야 하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건 내 사정이고, 팀원들이 이해할 필요는 없는 문제였다. 이 일로 나는 우리 팀이 얼마나 서로의 프로젝트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 소통이 안 되는지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억지로 하나의 팀으로 묶여 있을 뿐. 팀으로써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느새 팀 전체에 대한 스트레스로 번져가고 있는 때였다.


팀장님도 그것을 느꼈는지 친목을 도모해야 한다며 ‘금요일 하루라도 함께 점심을 먹자’라는 지령을 내렸다. 팀장님의 제외한 우리 팀원 모두 알고 있었다. 금요일 점심시간이 또 다른 일의 연장이 될 거라는 것을. 그만큼 우리 팀은 팀이라 부르기에는 심리적으로 너무 멀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데우는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