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은행나무 밑을 걷는 걸 좋아했다. 가을이면 샛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나뭇잎을 떨구고 난 후 후드득 떨어지던 은행열매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중 어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발밑으로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지던 은행열매다. 지금이라면 몸서리를 치겠지만, 그때는 후각보다 발밑의 촉각이 더 크게 와닿았었다. 부러 은행열매가 몰려 있는 곳을 골라 걸으며 은행을 타다닥 터뜨리는 재미에 빠졌다. 그 후에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운동화 밑을 꼭 씻어주었다. 그러면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길거리를 어지럽게 나뒹구는 은행이 없어질 때까지 혼자만의 놀이를 계속했다.
윽, 은행 밟았어
내가 더 이상 은행을 밟지 않게 된 건 엄마와 함께 길을 지날 때였다. 언제나처럼 타닥타닥 은행을 밟으며 튀어나가는 나와 달리 엄마는 발밑을 살피며 은행을 피해 조심히 걸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는 “윽, 은행 밟았어”라며 울상을 지었다. “엄마, 왜?”라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왜라니. 은행 밟으면 냄새나잖아. 너도 은행 밟지 말고 피해서 걸어”라고 답했다. 은행을 밟으면 정말 냄새가 나는 걸까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나는 금세 은행을 피해 걷는 것에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그 후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은행을 피해 살금살금 걷는다. 발밑에 무언가 ‘탁’ 터지는 느낌이 들면 잊고 있던 감각이 다시 깨어난 것처럼 반갑지만, ‘냄새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즐거움을 밀어낸다.
한동안은 은행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한바탕 은행 밟기가 끝나면 엄마에 의해서 운동화는 은행의 흔적을 감추었으므로. 혹여 냄새가 났다고 해도 탁탁 터지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던 터라 냄새는 기억에 남지 않았을 거다. 그런 나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은행은 밟으면 냄새가 난다는 걸 머릿속 깊이 떠올리게 됐고, 더 이상 은행을 밟지 않게 됐다. 대신 식탁 위에 올라온 은행을 이를 오도독 깨물어 씹는다. 씹을수록 고소하네 따위의 생각을 해가며 발밑으로 톡톡 터뜨리던 감각을 입안으로 옮겨와 톡톡 터뜨려 먹는다. 입이야 양치를 하면 되니까 하며 맛보다 재밌는 식감으로 은행을 오물오물 씹는다. 피하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즐겨 찾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은행을 마주한다.
그 사람은 “은행이 몸에 좋다고 하던데” 하며 밥 속에 있던 은행을 골라주었다. 내 밥 속에도 은행 몇 알쯤은 들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신 은행을 다른 때보다 야무지게 토독토독 씹으며 그 사람의 마음도 함께 삼켰다. 그랬더니 뱃속이 든든하면서도 따듯해졌다. 이래서 은행이 몸에 좋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남은 은행을 마저 열심히 먹었다. 이런 기분으로 밥을 먹는다면 세상 모든 음식이 건강식이 될 것만 같았다. 은행, 즐거움이 서린 기억에서 약간의 로맨틱한 마음까지 더해졌다. 덕분에 발끝에서 혀끝 그리고 뱃속에서도 은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