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으슬으슬하고 관자놀이가 콕콕 찌를 듯이 아플 때는 유자차를 따끈하게 데워 먹는다. 주로 겨울철 감기약 대신 먹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정성스레 만든 수제 유자청이 겨울이면 내 손에 쥐어졌다. 어느 날은 시어머님 친구분의 것이었다가 어느 날은 그 친구분의 딸이 만든 것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어머님이 직접 담그신 것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유자청이 배달될 때쯤 나는 겨울이 온 것을 실감했다. 겨울이면 감기 기운이 있을 때도 먹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를 들으면서도 마셨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도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봄날로 가기도 했다. ‘이게 이번 겨울에 마시는 마지막 유자차겠구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좀처럼 안 걸리던 여름 감기에 걸렸다.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내게도 전염됐나 보다. 혼자서 ‘그때 걸린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냉동실에 꽁꽁 언 유자청을 꺼낸다.
이게 이번 겨울에 마시는 마지막 유자차겠구나
자그마한 냄비에 한 숟갈 두 숟갈 떠 담고는 물이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정작 마시려고 하니 너무 뜨거워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처럼 얼음을 하나 띄울까 생각하다 뜨겁게 마셔야 효과가 좋은 게 아닐까 싶어 도로 자리에 앉는다. 곁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선 책 한 줄 읽고 유자차 한 모금 마시고 책 한 줄 읽고 유자차 한 모금 마시고를 반복하다 그냥 가만히 앉는다. 고요한 여름밤,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과 온몸을 감싸는 낯선 통증만 없으면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겠다 싶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밤을 특히 좋아한다. 한여름의 열기가 한뜸 식은 여름밤의 산책은 언제나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숲길을 지날 때면 확연히 낮아지는 그 온도를 좋아한다. 시원함을 느끼며 거니는 초록의 길은 걷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도 만보쯤은 너끈하다. 어떤 것을 좋아하면 다른 것도 함께 좋아지는 걸까.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피해 입을 꼭 다문 채로 걷는다. 혹여나 하루살이를 삼키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가로등을 지날 때는 잠깐이지만 숨을 참기도 한다. 혹 코로 하루살이를 들이켤 수도 있으니 숨을 참다 참다 날숨만 겨우 내뱉는다. 그런데도 한여름밤에 산책은 포기할 수 없다.
한여름에 마시는 유자차는 어쩐지 초록빛이 어린것 같다. 바닥에 남은 몇 모금마저도 상쾌하기 그지없다. 혀로는 달짝지근 맛을 느끼며 한없이 푸르른 나무 사이를 걷는 상상을 한다. 머리의 두통이 금세 가셨다. 때론 좋아하는 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활력이 돋기도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