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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Jan 30. 2023

잘 나가는 제품을 왜 단종시켜요?

이거 단종시키면 회사 찾아가서 시위할 것입니다, 할머니 될 때까지 쓸게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으니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물건을 '단종됐다'고 한다. 스마트폰 같은 디바이스는 사양, 또는 운영 체제가 노후되거나 신제품이 크게 우세할 경우 단종이 결정된다. 그리고 단종이 결정된 제품은 재고 처리를 위해 1+1 행사 또는 반값 후려치기 등 초저가에 팔리기도 한다. 화장품에서의 단종도 비슷하다.


아니, 잘 팔리고 있는데 왜 단종? 나만 잘 쓰고 있었나?

오죽하면 소비자들은 본인 SNS에 '단종될까 봐 올리는 후기'라는 내용으로 본인이 쓰는 제품 리뷰를 쓰고 홍보에 앞장선다. 혹시라도 판매 중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 쓴 공병을 몇 개씩 모아서 잘 쓰고 있다며 인증샷을 올리기도 한다. 굿바이 세일이라도 한다 치면, 세일 첫 날은 비장한 각오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장 모두를 털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내가 잘 쓰던 제품을 다시는 살 수 없을테니까.


동일한 브랜드의 세럼을 5병째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의 공병 떼 샷(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글 하단에 기재)


단종이 결정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제품 리뉴얼을 들 수 있다. 리뉴얼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 트렌드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함이다. 현재는 잘 팔릴지라도 몇 개월 후도 지금과 동일할 거란 기대는 위험하다. 패션, 특히 뷰티 시장은 유행 주기가 몇 개월, 혹은 분기별로 상당히 짧다. 소비자들의 취향 또한 가변적이므로, 화장품 회사 입장에서는 사전에 잘 팔릴 아이템을 예상하고 기획, 리뉴얼하는 게 중요 업무 중 하나다. 간혹 원료사의 원료 생산 중단으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제품을 리뉴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제품 리뉴얼은 기존 단종 제품과 얼마나 다를까? 기존의 단종 예정 제품에서 효능 성분만 변경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 이상의 성분 함량과 사용감을 트렌드에 맞춰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비건 트렌드가 있어서, 비건 인증을 받기 위해 기존 제품의 비건 미인증 원료를 비건 인증 원료로 변경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외 수출 병행 제품은 수출 대상 국가의 기준을 준수해야 수출 가능한데 국내법과 다른 경우, 이 경우는 리뉴얼이 아니라 같은 이름의 제품이더라도 수출 전용 제품을 별도로 개발하기도 한다.



단종 금지 소식에 소비자 반응이 빠르게, 많이 모이는 제품은 그 제품의 인기를 반증해주기도 한다. (출처: 구글이미지 검색, 글 하단에 주소 기재)


단종 소식이 전해지면 '이 에센스만큼 한겨울에도 촉촉하고, 흡수 빠른 제품이 없었는데.' 또는 '몇 년째 이 제품만 정착해서 쓰고 있었는데, 단종이라고요? 세일할 때 3통 더 쟁여야지.'라는 반응은 SNS나 댓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피부는 계절과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매일 다르다. 그러나 하루 이틀 차이로 날씨가 오늘은 영하 15℃였다가, 내일은 영상 35℃에 육박하는 일은 없다. 그러니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까지도 같은 제품을 꾸준히 쓰는 게 가능하다. 언제 쓰더라도 아무 문제 없이, '보통의 상태를 보장'한다는 건 얼마나 안심이 되고 편한 일인가. 그러니 소비자는 내가 잘 쓰고 있는, 소위 '애정템'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소식에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금보다 더 좋은 효능과 성분으로 돌아온다지만, 소비자들은 리뉴얼 소식을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더 바라는 게 없는데 괜히 리뉴얼하고 제품이 달라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여기에 가격까지 인상되면, 이탈 고객이 나오기도 하고 일부는 자기에게 맞는 제품을 찾는 '유목민' 신세로 돌아간다. 마치 기존 세력을 지지하다가, 교체된 지도층을 지켜보니 나와 뜻이 달라서 기꺼이 그 세력에 따르지 않는 자유 시민과도 같다. 하지만 권력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바, 브랜드사가 언제나 소비자 동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화장품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화장품은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 정량만 바르는 게 아니다 보니, 같은 제품도 다르게 느낄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간혹 리뉴얼 의뢰를 받을 때가 있는데, 브랜드 매니저도 기존 고객층을 형성한 제품임에도 리뉴얼을 해야 하니 가능하면 차이가 없게끔 재출시하기를 원한다. 정히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으면 아예 단종 처리 후, 트렌드에 맞는 신제품을 기획하는 게 사실은 브랜드 매니저나 제조사 입장에선 편하다. 만일 기존 제품의 성분과 함량이 많이 바뀌어야 하는 경우, 리뉴얼 제품이 단종 예정 제품의 사용감과 효과 면에서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아라비카 50% : 케냐 AAA 50% 블렌드나, 로부스타 70% : 아라비카 30% 블렌드 모두 혼합 커피 원두다. 이 두 가지 블렌드의 각 원두 비율을 조정해서 향미나 바디감을 똑같이 맞추는 게 가능할까? 어떤 특성은 가능할 수도 있고, 혹은 원두 자체의 차이에 따른 한계도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리뉴얼 제품과 단종 예정 제품의 구성 성분과 함량이 불가피하게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완제품을 바를 때 거의 차이가 없도록 개발하는 건 쉽지 않다.


소비자가 잘 쓰고 있는 제품들을 모아서 재밌게 소개한 카드 뉴스(출처: 글 하단에 주소 기재)


화장품 원료마다 보습력, 사용감 등이 다르니 제형 연구원이 가진 원료에 대한 이해와 개발 및 생산 경험도 꽤 중요하다. 아무튼 소비자 입장에서 내가 쓰는 제품이 곧 '단종'이란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사실이다. 나도 내가 쓰는 젤 크림이 계속 판매되었으면 좋겠다. '클리어런스 세일' 때 시험 삼아 사 본 제품이 이렇게 마음에 들 줄 알았으면 5개는 사두는 건데, 바를 때마다 만족스러우면서 아쉬운 마음이 같이 든다.







-이미지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231056&code=61171811&s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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