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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Feb 13. 2023

4호 갓-아기천사는 대체 무슨 색일까

힌트: 갓기천사가 본 명칭이고 립 틴트 제품의 컬러명 중 하나입니다

2  저녁, 약속이 있는데 화장품 파우치를 깜빡하고 두고 나왔다. 그래서 대충 립밤이나 하나  요량으로 간만에 올리브영에 들렀다. 색조 제품 매대를 보니 발랄한 레드와 핑크, 그리고 체크무늬의 제품들이 줄지어 서서 나를 반겼다. (Lip) 제품이 진열된 위치에는 열댓 가지 컬러의 틴트, 글로스들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중 연핑크색 뚜껑의 제품을 하나 집어 들었다.  제품은 수명이...


'... ? 갓기천사? 아기천사? 이게 정확히 무슨 색깔이지?


순간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물음표가 새싹처럼 돋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용기 색상이나 내용물로 봐선 이게 핑크인  알겠는데, 수명과 색상은 전혀 매칭이 되지를 않았다. 보통 '베이비 핑크' '베이비 코랄' 처럼 '베이비'라는 단어가 있으면, 흰색이 많이 섞이고 채도는 낮은 컬러를 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갓기'라니... 이게 아기(Baby) 말하는 건지,  조차도 모호했다.


구글에 #FCB4AC로 검색하면 위와 같이 컬러의 스케일(Scale)과 좌표값을 동시에 알 수 있다. 베이비 코랄과 뮤티드 코랄, 어느 것이 더 어울리는 홋수명일까?


 색상은 스케일로 구분하는 영역이라  무수한 색상마다 명칭을 정할  없다. 그래서 똑같은 #FCB4AC 봐도 명칭이 있는  아닐뿐더러,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우니 베이비 핑크든, 뮤티드 코랄이든 모두 정답이   있다. 마찬가지로 화장품 또한 컬러가 천차만별이라 수명은 상품 기획자가 정하기 나름이다. 사실, 수명으로 컬러를 짐작할  없는 경우는  많다. 나스(NARS) 립펜슬 '드래곤 '이나 클리오 쿠션 '진저'  예다.



나스의 립 펜슬 드래곤 걸(Dragon Girl)과 클리오의 쿠션 발색사진. 홋수명만으로는 색상 유추가 쉽지 않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하단 기재)


아무튼 '갓기천사'에서 나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수와 컬러가 매칭이 되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예상치 않게, 화장품을 고르는데 모르는 단어가 소위 '갑툭튀'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분명 한글인데 뜻을   없는 단어라니, 순우리말도 아닌  같은데. 다른 수명을 보니 역시 독특하다. '손웜수템' 아마도 '손민수 하다'라는 신조어와 웜톤을 합쳐서 만든 용어 같다. 그리고 '극락좌표' 그래, 요즘 '너무 좋다'라는 말을 '극락이다'라고 하는  종종  상에서 보곤 했지.


나는 마스크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어느새 대충 싼 걸로, 하나 집어서 나오려던 마음은 사라졌다. 그 대신, '이렇게 깜찍한데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로 골라야지' 하고 신중하게 제품을 비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약속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장장 십 분이 넘도록 최종 두 컬러 간의 갈등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고민한 끝에 구매한 건 단일 컬러만 출시하는 해외 브랜드의 립밤이었다. 비록 구매를 하진 않았지, '새롭고 발랄한' 화장품들에게 푹 빠져서 보낸 시간은 꽤 즐거웠다.


내가 립 틴트를 고르면서, 결국 사지도 않은 제품들로 시간을 보냈음에도 즐거웠던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내 손에 쥐고 있는 이 틴트를 바르면 이 제품이 갖는 무드(Mood)를 이어받아서, 바르기 전보다 생기 있고 밝은 이미지가 내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 때문이 아닐까. 화장품은 상상에만 존재하는 나의 모습, 이미지를 실제로 드러낼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이다. 색조뿐만 아니라 기초 제품도 마찬가지다. 단지 효과 측면에서 볼 때 사용한 그 즉시 기대가 현실이 되냐, 아니면 수 일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타나냐의 차이일 뿐이다.


갓기천사는 최근 연예인뿐만 아니라 직업, 분야를 막론하고 훌륭한 능력의 인재들에게 붙여지는 애칭이다. (이미지 출처: 하단 기재)


집에 와서 동생에게 갓기천사가 뭔지 아냐고 물으니, "아 그거? 갓(God)이랑 아기천사를 합친 말 아니야?" 라며 곧바로 정답을 맞혀버렸다. 언제 알고 있었나 신기해서, 너도 이 단어를 쓰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20대 후반의 언어 세계관에서도 흔한 말은 아니구나 싶어 알량한 안도감이 드는 한편, 정확한 단어의 의미가 궁금했다. 갓기천사는 신(God)과 아기 천사가 합쳐진 단어로 어린 나이임에도 신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른바 '조기만성형 인재'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제 '빼박' 30대인 나는 잘 모르는 신조어를 쓰는 세상에 오니 조금은 쑥스럽고, 조심스러우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쩐지 그들의 세계가 참 귀엽다. 내가 처음 이 브랜드의 틴트를 산 지가 한 7년은 된 것 같다. 그 후 타겟 연령대나 아이덴티티와는 점점 멀어진 나와는 다르게, 브랜드 이미지는 아직도 여전히 밝고 당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브랜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브랜드다. 비록 시간은 몇 년 지났지만, 나도 한 때는 주요 타겟층이었던 사람인데... 갓기천사, 익숙해지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www.labluxuryresale.com/products/nars-velvet-matte-lipstick-pencil-dragon-girl

https://www.amazon.com.au/CLIO-Cover-Founwear-Cushion-SPF50/dp/B088LJ625P

https://www.adic.or.kr/journal/column/show.do?ukey=556355&oid=@68391|1|17https://images.app.goo.gl/bMf1bVzzMvHe33gQ6

https://images.app.goo.gl/bMf1bVzzMvHe33gQ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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