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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전신간 Jul 23. 2023

피부를 위한 요리

쉐어버터의 풍부한 오일감을 맛보세요.


믹서는 약 rpm 7,000으로 회전 중이다. 이미 물과 기름이 균일하게 섞여서 희고 불투명해진 크림은 점도가 낮다. 이대로 비커에서 덜어내면 아마 로션처럼 느껴질 것이다. 지체하지 않고 점증제를 전부 부어 넣었다. 순식간에 믹서에서 나던 위이잉 소리가 우우웅으로 바뀌고, 비커 벽면을 긁는 스패츌러에는 힘이 들어간다. 아까보다 훨씬 질감이 단단해졌다. 살짝 유백색이 도는데... 앗, 이건 마치, 빵에 발라놓으면 그야말로 영락없는 생크림이다.


요즘 크림 제형을 만들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제형을 볼 때마다 샤베트, 버터, 요거트 같은 게 자꾸 떠올라서 마음을 어지럽힌다. 흥미롭게도 식품과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는 화학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게 많다. 


오일을 풍부하게 넣은 고보습 크림. 휘핑크림 같다.


다만 원료의 제조 과정과 품질 검사 기준이 다르다. 이는 완제품의 쓰임이 다르므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원료가 유사하다고 한들 상품의 단계로서 볼 때 어디까지나 엄연히 구분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저 나의 상상력이 이 두 영역을 오가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식충이의 본능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일하기 힘들다. 이 끝없는 상상에 논리적인 제동을 걸기 위해서, 식품과 화장품에서 말하는 '크림(Cream)'의 닮은 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학부 때 식품 가공학을 배운 게 결국 이렇게 연결되는가 싶다. 감사합니다, 백 교수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 중에서 아이스크림이 아닌 하나는 어느 것일까.(출처: freepik)



왜 크림을 크림이라고 하지?


우유를 가열하면 표면에 피막이 생기는데, 그걸 프랑스어로 'creme'이라고 불렀고 영어로 'cream'이 되는 변천사를 거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이 피막은 유지방이 우유 표면에서 응집된 것으로써 크림은 지방, 기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어의 어원은 식품에서 유래했으니, 화장품에서 말하는 크림은 형태 및 그 속성이 먹는 크림하고 유사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식품 위생법에서는 유지방이 18% 이상이며 산도 0.2%인 경우를 크림이라고 한다는데, 화장품도 그렇지는 않다. 지방 성분이 18% 일 수도 있고 그보다 2, 3배는 더 많은 제품도 있다.


크림 성분의 함량 비율은 우선 물이 기름에 비해 현격하게 적거나 많지만 않으면 된다. 그다음, 균질한 덩어리의 형상이 수 일 내 분리되지 않고, 통상적인 온도 변화에도 초기 특성이 유지되면 화장품으로서 개발을 검토해 볼 만하다.




하트 오브 더 크림


스킨, 에센스와는 다른 크림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가 바로 오일이다.(현업에서는 보통 기름을 오일이라고 한다) 크림에 쓰이는 오일류는 흐르는 액상뿐만 아니라 쉐어버터, 카카오버터 등 고형상은 물론이고 실리콘계 합성 오일까지 모두 사용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 오일은 끈적임이 적고 실크처럼 매끈한 느낌이 있어서, 크림에 첨가할 시 건조하지 않으면서 산뜻하게 마무리되어 지성 피부용 제품에 잘 쓰인다.


아이크림을 만들었는데, 쫀쫀한게 눈 밑에 착 달라붙어서 발리는게 좋다.


유전적으로 피지 분비량이 부족한 건성 피부 타입은 부족한 피지량 때문에 얼굴이 건조하고, 땅기며 불편하다고 느끼기 쉽다.


이런 경우 보습용 크림을 발라서 부족한 유수분을 더해주면 한결 편안하다. 화장품에서의 기름은 피지의 기능을 대신함으로써 피부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해 주고, 건조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를 유연화 효과, 보습 효과라고 한다.




크림을 음미하는 과정


어떤 것을 깊이 느끼고 향유하는 행위를 음미한다고 하는데, 가장 본래적인 뜻으로 쓰일 때가 바로 '음식'을 음미하는 것이다.



잠깐 생크림을 크게 한 입 떠먹는다고 상상해 보자. 입천장에 닿자마자 크림 속의 미세하고 수많은 기포들은 사그라들고, 크림은 녹진하게 퍼져 내린다. 그리고, 설탕의 단 맛이 혀를 감도는 동시에 입 안 가득히 피어오르는 유지방의 풍부한 맛.


생크림에서 유지방이 크림의 풍미를 장식하는 것은, 화장품에서 오일이 제품의 핵심에 기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늘도 실험대에 서서 크림을 제조하면서, 이 천연 에스터 오일을 5% 넣으면 과연 어떤 질감과 풍미를 가진 크림이 될지 자연스레 상상해 본다.



젤 크림과 잼


아래 사진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크림들을 직접 찍은 사진이다. 상단은 투명하고 산뜻한 젤 크림, 하단은 불투명하고 보드라운 유화 크림. 단순하게 나눈 것이다.


지성 피부라서 여름엔 상단의 젤 크림만 쓴다. (출처: 본인)


상단의 젤 크림은 쫀쫀하고 탱글거리는 사용감이 특징이다. 수용성 겔과 식물 추출물, 비타민 C, 당류 등으로 만들어졌다. 자일로스는 흡습성 때문에 보습 효과가 있고, 히알루론산 또한 익히 보습에 좋은 원료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젤 크림은 외관의 투명함 때문에 과일 젤리, 또는 잼과 닮았다.



수딩 젤도 여름철 피부에 시원함을 주기 위해 고함량의 물과 글리세린 등으로 만들어진 젤크림이다.


한편, 잼은 과일 산의 시큼함과 설탕, 그리고 펙틴이라는 섬유질의 조합으로 탱글거리는 잼이 된다. 젤 크림이 잼과 비슷해 보인다고 했지만 필요 성분과 pH, 또 가온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화장품과는 다르다.


그리고 잼은 상당히 끈적거리는 반면, 젤 크림이 잼처럼 끈적이면 상품성으로는 영 꽝이다. 머리카락과 먼지가 얼굴에 달라붙을 테고, 마치 끈끈이 물풀을 바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젤 크림도 오일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함량이 적고, 사용감 또한 얇고 가벼운 오일을 쓴다. 여름에는 젤 크림, 겨울에는 불투명한 크림을 쓰면 되겠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유화 크림과 버터


하나는 화장품, 다른 하나는 식품이다. 질감만 봐서는 구별이 어렵다. (출처: freepik)

유화 크림은  크림에 포함되는 성분도 포함하면서, 점도 오일과 왁스, 버터상 원료가 더 많이 어간다. 이들 원료발라보면 묵직하고 도톰하며 일부는 상온에서 불투명다. 때문에 별도의 색소를 넣지 않은 유화 크림은 최소 반투명, 불투명한 백색 또는 미황색이다.


무엇보다도 크림을 바른 뒤의 피부의 부드러운 느낌은 오일의 사용감에 크게 기인한다. 특히 왁스나 버터상 원료가 많이 들어간 크림은 이 크림들은 스프레드 버터처럼 묵직하면서 살짝 뻑뻑해도, 촘촘하고 매끈하게 녹아든다. (크림 짜낸 사진 중 하단 세 번째 크림 참고)


셋 중에 분류가 다른 하나를 고르려면 뭘 골라야 할까.(출처: freepik)

한편, 식빵에 발라먹는 스프레드 버터는 지용성 성분이 약 80%로 화장품에 훨씬 많다. 유지방 또는 야자유(팜유) 등이 주성분이며, 산패를 막기 위해 비타민 E나 산화방지제 등을 추가한다. 기름이 대부분이라, 얼굴에 발랐다간 개기름 폭발이다.


되직하고 단단한 그릭 요거트의 질감 또한 꾸덕한 크림과 비슷하다. 그러나 요거트는 지방 비율이 버터나 크림보다는 훨씬 낮다. 요거트는 유산균이 우유로부터 만든 젖산과 반응해서 뭉쳐진 단백질 덩어리로서, 수분을 최대한 많이 제거할수록 꾸덕해진다. 그래서 꾸덕한 크림 같아도, 피부에 착 밀착이 되지 않으니 바르기에 적합하지 않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


맛은 혀로만 보는 게 아니라 코로도 본다. 맛의 상당 부분은 후각과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후각도, 음식의 맛을 감지함에 있어서는 첫 번째가 아니다.


눈이 제일 먼저 음식을 맛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따라서, 크림을 보고 음식을 연상하는 건 단지 내가 식충이라서 혹은 배고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음식도 화장품도, 눈으로 먼저 지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맛과 관련된 감각을 잘 설명한 그림(출처: 하단 기재)



화장품은 피부에 양보하기


많은 이들 화장품에서 시각의 연상 작용을 경험한다. 그리고 화장품 회사들도 식품 브랜드와 함께 다양한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음직스러운 화장품'은 기획과 출시에 신중해야 한다.


화장품과 식품 업계의 콜라보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출처: 기사 내용, 하단 기재)

과거 2018년 즈음에 화장품 내용물뿐만 아니라 포장과 용기마저 식품으로 착각할 수준이 되자 식약처에서는 '식품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는 화장품'의 출시를 제재하기로 했다.


이종산업 간의 '이색 콜라보레이션'은 펀슈머의 등장으로(fun-consumer)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간혹 제재를 받는 상품도 등장한다. 재밌는 제품들보다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품이 본질에 우선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피부를 위한 제품은 피부를 위해 양보하자.







이미지 및 기사, 참고 논문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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