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에 벨이 울렸습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마냥 벨만 누르는 모습에 '뭐지?'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동의서 사인을 받으러 왔다며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종이를 내미는 모습에 공사 일정 확인만 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인을 받는 분의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찜찜했습니다.
그리고 공사를 한다는 날이 되었는데 너무나 조용한 겁니다.
사인을 하던 그날의 찜찜함이 남아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우리 동에 인테리어 공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없다'였습니다.
그때부터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사인을 했을까? 세대주의 이름을 알아서 뭘 하려는 걸까?
앞집 할머니도 사인을 했을까? 우리 동만 사인을 받았을까?
뭔가 크게 사기당한 것 마냥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인을 해 주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관문 앞에 공사를 하게 되었고,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쪽지가 붙어있더라고요.
그 쪽지를 보는 순간 그간의 찜찜함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쩌다, 어째서, 이런 찜찜함을 느꼈을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말 한마디도 가벼이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개인정보가 들어가는 모든 행위는 사기에 사용될 가능성이 많은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새집으로 이사오기 위해 하는 사인에도 찜찜함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어쩌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어쩌다 우리는 믿음보다는 의심을 먼저 해야 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마음속 찜찜함은 사라졌으나 뭔가 씁쓸한 맛 가득 느껴지는 오늘의 일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