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죽으면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저로 자랄 나무가 아이들의 그리움을 대신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순간과 제 아이들이 같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저를 대신할 나무가 자라는 시간이 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짝지는 자신은 화장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그리워할 때 찾아올 곳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자신을 찾아와서 하소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기쁜 일도 나누고 해야 하는데, 화장을 하면 그러지 못한다고 말이죠.
사실 그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할아버지가 그립고, 뭔가 하소연하고 싶을 때면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곤 합니다.
그리곤 산소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모든 말들을 쏟아내곤 합니다.
산소에서라도 그렇게 앉아 있으면 마치 할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저를 그리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세상에 없고, 곁에 없어도 그리워해 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도 참으로 행운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의 그리움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금 더 고민을 해 봐야겠습니다.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먹먹한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