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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슘 Oct 07. 2024

나리꽃

 아이와 산책을 하다 우연히 눈에 익은 꽃을 봤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그냥 생김새만 알던 그 꽃이 ‘나리꽃’이라는 것은 오늘 알았습니다. -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시골 사람입니다. 경상도 저~ 구석 깡촌에서 자랐어요. 시골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하듯 집안에 각종 과실나무와 선인장,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오늘 이름을 알게 된 나리꽃이 있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예쁜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는 온갖 예쁜 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이 할머니의 기쁨이었습니다. 가끔 밖에 나가서 작은 화분을 얻어 오실 때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작은 선인장이 꽃이라도 피우면 한 참을 그 꽃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저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참 아이 같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프시고 시골집이 비면서, 당연히 여기며 봤던 그 꽃들이 없어졌습니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사라지는 나무와 꽃들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 ‘나리꽃’이 너무 기쁘면서 슬펐습니다. 진한 향기를 품어내는 이 아름다운 꽃이 너무나 서럽게 다가왔습니다. 할머니와의 추억과 할머니의 미소를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보게 된 것 같아 너무나 기쁘면서도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이제 시골집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도 달라지셨습니다. 집은 모든 식물들이 사라졌고, 할머니는 예쁜 꽃을 바라보면서 좋아하던 아이 같은 모습에서 진짜 아이가 되어가는 중이거든요. 그래서 나리꽃을 보면서 준비되지 않았던 우리들의 변화가 생각나 슬펐습니다.  


 처음엔 반가웠어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라서... 그러다 점점 슬퍼졌습니다. 달라져버린 할머니가 생각나고, 변해버린 집이 생각나서... 준비되지 않은 이별 통보를 받은 것 같아서...


 갑자기 맞이한 추억이 오늘은 슬픔으로 다간 온 날입니다. 옛 추억에 좋기도 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이별처럼 슬픈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 꽃 향기처럼 기쁜 듯 슬프게 추억을 떠올려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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