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에서 비를 쏟아붓는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비를 보고 있으니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비 맞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산을 가지고서도 비를 맞곤 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마치 비가 오지 않는 것처럼 걸었어요. 빗방울에 안경너머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비 맞는 것이 좋았습니다.
한 번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 친한 동생과 비를 맞아보자고 했어요. 둘이서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온 동네를 뛰어다녔어요.
문제는 천둥이었어요. 비를 맞는 것은 너무 좋은데 천둥은 무서웠던 거죠. 그래서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다가 천둥이 치면 그 자리에 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천둥소리가 줄어들면 동네를 막 뛰어다니고, 천둥이 치면 그 자리에 서서 소리 지르고를 반복했습니다. 상상이 가실까요? 여자 애 둘이서 비를 맞으며 동네를 뛰어다니다 천둥이 치면 그 자리에 서서 소리 지르는 모습이.
지금 돌아보면 이것은 저의 낭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비 맞는 것...
지금은 비를 맞아 볼까 생각하면, 일단 젖은 옷으로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가 난관입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이라니...
그리고 빨아야 하는 많은 옷들이 다음을 이어요. 옷을 갈아입기 전까지의 축축함도 떠오릅니다.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들어가는 것도 일이네요.
어린 시절의 그 낭만은 이젠 현실이 되어 사라져 버렸어요.
결국 저는 낭만보다는 현실을 택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자라는 저희 아이들은 한 가지의 낭만은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실을 살면서도 아껴둔 낭만 한 가지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욕심일까요? 그래도 낭만을 가진 사람으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한 때는 낭만 가득한, 자신만의 낭만을 가진 사람이 저였음을 새삼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자라는 아이들이 그때의 저처럼 낭만 가득한 무엇인가를 간직하며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고 바랍니다.
낭만이 뭐 별 건가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무엇인가가 있으면 그것이 낭만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