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돈이다. 하지만 무작정 돈을 푼다고 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부흥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자금을 투자해야 투자사도 스타트업도 성장할 수 있다. 아비랩에서 아세안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힘쓰는 VC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500 스타트업(Startups)은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글로벌 VC(Venture Capital)로 2010년 설립됐다. 공식 홈페이지 기준 75개국, 2300개가 넘는 회사(2020년 2월 현재)에 투자했다. 2019년 1월, 500 스타트업에 따르면 운용 펀드 금액은 총 4억 5400만 달러로 우리 돈 약 5천 370억 원에 달한다.
500 스타트업은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VC다. 2015년에 1천 500만 달러 마이크로 펀드인 “500 김치(Kimch)” 펀드를 결성, 한국에 진출했다. 스푼, 오피지지(OP.GG), 퍼블리(publy) 등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아세안 진출은 2014년에 두리안(Durian) 펀드1을 만들며 본격 시작했다. 1천만 달러로 시작한 첫해에만 50개 스타트업에 투자할 정도로 공격적이었고, 2년 만에 2천 5백만 달러로 확장했다. 2015년에는 태국에 500 툭툭(500 TukTuks) 마이크로 펀드를 결성했고, 2016년에는 베트남에 1천만 달러 규모 마이크로 펀드도 만들었다. 이후 두리안 펀드는 5천만 달러 규모 두리안 펀드2로 확장했다.
이 글에서는 500 스타트업이 투자한 주요 아세안 투자사에 관해 알아본다.
500 스타트업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투자사 중 하나가 그랩이다. 그랩은 이미 아비랩에서도 많이 다뤘지만, 500 스타트업 투자사를 논하면서 그랩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짚고 넘어간다. 아세안의 우버를 넘어 아세안 넘버원 플랫폼으로 성장 중인 그랩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비랩 기사로 대체한다.
인도네시아 유니콘은 총 4개사(2020년 2월 현재)로 트래블로카(Traveloka), 토코피디아(Tokopedia), 부칼라팍(Bukalapak), 오보(OVO) 등이다. 인도네시아 승차공유 스타트업 고젝(Go-Jek)은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넘어서며, 데카콘으로 성장했다.
부칼라팍은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으로 아세안의 아마존으로 불린다. 소상공인 약 400만 명이 1억 개가 넘는 물건(2019년 기준)을 부깔라팍에서 판매하는데, 하루 평균 200만 건 이상이 거래되며 고객은 7천만 명이 넘는다.
전자상거래를 정복한 부칼라팍은 금융업으로 손을 뻗었다. ▲전자상거래 안전성을 확보하는 에스크로(Escrow) 서비스 ▲확보된 자금으로 대출 서비스 ▲펀드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요 비즈니스 라인업을 보유한 부칼라팍을 자본이 그냥 둘리 없다. 앤트파이낸셜, 싱가포르투자청은 물론 2019년에는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의 아시아그로쓰펀드에서 5천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500 스타트업은 2014년, 부칼라팍에 투자했다.
2012년 8월 출시 단 3일 만에 싱가포르 무료 라이프 스타일 앱 2위에 오르며 시작한 캐러셀은 동남아 최대 중고거래 사이트가 됐다. 싱가포르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호주, 홍콩 등 7개 국가로 확장했다.
캐러셀에는 2억 5천만 개 상품이 올라왔고, 7천 100만 건 거래(2019년 기준)가 이뤄졌다. 사용자는 매월 약 8천만 건 검색을 하며, 캐러셀은 인공지능(AI)과 증강현실(AR)을 활용해 상품명, 분류, 가격 등을 자동으로 만든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캐러페이(CarouPay)를 출시하는 등 지속해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중고거래를 혁신하기 위해 글로벌 블록체인 테라(Terra) 얼라언스에도 합류했다. 번개장터, 티몬, 배달의민족 등이 함께하는 테라 얼라이언스에 캐러셀도 함께한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를 도입하고, 수수료를 낮추는 등 효과가 기대된다.
시장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캐러셀은 2019년 4월 글로벌 광고회사 OLX에게 지분 10%를 5천 6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이 거래로 캐러셀은 기업가치 5억 6천만 달러(약 6천 624억 원)로 인정받게 됐다.
500 스타트업은 2012년, 캐러셀에 투자했다.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는 아비랩에서 다룬 스타트업 중 가장 독특한 비즈니스를 자랑한다.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주택’이 상품이다.
필리핀 최초의 유니콘 기업인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첫 분기부터 흑자를 냈다. 이들이 만드는 주택은 현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조립형 주택이다.
혁신은 설계비를 낮추는 데서 왔다. 자하 하디드, 장 누벨 등 80여 명의 유명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미리 설계해둔 집을 공급한다.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의 집은 한 채 당 평균 12만 달러로 23.1㎡ 크기의 경우 기본형이 1만 달러다. 이는 홍콩의 동일 면적 아파트의 72분의 1에 불과하다(2018년 기준).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는 로베르토 안토니오(Robert Antonio) 대표가 미국 뉴욕에서 10년여 부동산 개발업자로 일하며 쌓은 네트워크로 시작됐다.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 럭셔리 브랜드와 포브스 등 미디어 그룹의 부동산 개발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건축가와 일했다. 2017년 포브스에서 발표한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한 부자 50명 중 한 명인 안토니오 대표는 필리핀 센추리 프로퍼티즈 그룹(Century Properties Group, Inc) 창업자 호세 E.B. 안토니오의 아들이다.
주택 업계의 이케아를 꿈꾸는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는 훌륭한 디자인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500 스타트업은 2017년, 레볼루션 프리크레프티드에 투자했다.
다른 VC와 마찬가지로 500 스타트업도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개월 동안 진행하는 시드 프로그램이다. 500 스타트업 홈페이지에 따르면, 초기 투자 시 약 6% 지분을 갖고 15만 달러를 투자한다. 초기 스타트업을 기업가치로 약 250만 달러(약 30억 원)를 책정하는 것이다.
500 스타트업이 자랑하는 1천 명이 넘는 투자사 창업자와 멘토 200여 명은 매력적이다. 벌써 26번째 배치(시드 액셀러레이터)를 진행하는 500 스타트업은 3월 데모데이에서 이 스타트업을 공개한다.
26번째 배치의 29개 회사 중 37%가 미국 외 지역에서 참여했다. 자타공인 글로벌 VC를 인증하는 500 스타트업의 앞으로의 행보는 기대해볼 만 하다.
500 스타트업의 2300개가 넘는 투자사 포트폴리오는 2005년 시작된 세계 최초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버금가는 숫자다. 역시 세계 최고 VC 중 하나로 꼽을만하다.
아세안에 펀드를 만든 건 2014년부터지만, 캐러셀에는 이미 2012년에 투자했다. 여러 유니콘을 선택한 선구안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 역시 자랑할 만 하다.
성장한 VC에게는 자금과 스타트업이 몰리게 돼 있다. 이 영역은 마치 플랫폼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세계 최고를 꿈꾸는 스타트업이 세계 최고 VC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유니콘을 꿈꾸는 아세안 스타트업에게 500 스타트업은 최우선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