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간의 배움
도밍고뉴스를 만들겠다고 회사를 나온지 4개월. 그동안 12개의 (0-11화) 칼럼을 공유하며 여러분들과 도밍고컴퍼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4개월은 대학생에게는 한 학기, 1년의 1/3, 정말 작은 IT 프로젝트의 기간 정도가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간동안 회사를 나와 홀로서기를 하는 데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당장 내일 어떠한 일이 생겼을 경우 예전보다는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몇 달 뒤의 내 미래가 조금은 덜 걱정된다. 과연 4개월간 나는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뭘 배웠는지 짧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축구계에는 슈퍼스타들이 있다. 특히 신으로 불리는 두 선수가 있는데, 레알마드리드의 호날두와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그들이다. 이들은 수비수 한, 두명을 무력화 시키는 능력이 있으며, 심지어 네, 다섯 명의 선수들을 피해서 골을 넣기도 하는 슈퍼스타들이다.
축구팬들은 이들을 신계의 선수들이라 부르며, 심지어 선수들 또한 이들을 동경한다. 감독들은 이들 자체를 전술이라 말하기도 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왜냐고? 그래도 되니까.
자, 이게 도밍고뉴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도밍고뉴스를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기획, 마케팅, 디자인, 개발을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당장 할 수는 없지만, 당장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아직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즉, 내가 공부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 했던 것이다.
나는 어디서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왔던 것일까?
첫째는 회사 내에서 내 유니크한 포지션에 있었다.
나는 Android 개발자로 4년을 일했고, 2년이 지나고 나서는 지방 프로젝트를 전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이게 인구가 서울에 몰려있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각종 행사 또한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려면 서울에 와야 한다. 때문에 지방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방에 가서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앱 개발자는 웹 개발자에 비해서 소수이기 때문에 내 포지션은 유니크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내 동료들과 상사들은 내게 '잘한다~ 잘한다~' 를 시전하였고, 나는 내가 객관적 능력 이상으로 뛰어난 사람인줄 착각 했던 것이다.
둘째, 넓은 관심사.
상대적으로 관심사가 넓은 사람은 얕은 지식이 많다. 내가 속한 업계에서는 주어진 업무만을 하도록 권장하기에 또 다른 관심사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시간, 인터넷 등의 여건이 안된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주말을 이용해 스타트업 관련 행사를 다니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태블릿을 이용해 틈틈히 리눅스 공부도 했고, 새로운 라이브러리가 발표되면 적용해보고 팀 내에 공유하곤 했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들은 내게 남들과 조금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주었고, 나는 이것을 내 '재능' 이라 생각했다.
물론, 좋게 이야기 하자면 꾸준한 자기계발을 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깊이면에 있어서는 턱 없이 부족하기에 그저 관심을 두었다 정도가 맞겠다. 어쨌든 나는 내 관심사와 그에 대한 열정을 내 '재능' 이라 여겼고, 내 잠재력을 툭 건들기만 하면 빵! 터질거라 생각했다.
셋째, 책과 기사. 그리고 자기암시
나는 자아가 강한 편이다. 원하는 것이 있고, 때때로 옳지 못한 것이라 판단하면 상대에게 옳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내 주관에 따라 행동하고,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물론, 이 성격으로 인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SWIKI 를 운영하며 1년간 스타트업 기사를 매일 같이 읽었다. 관련 서적과 자기계발 서적도 꾸준히 읽어왔고, 이 텍스트들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무언가를 심어둔 것이다. 즉시 실천해야 한다거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등의 열정을 일으키는 이야기들 말이다.
여기에 내 강한 자아가 합쳐져 나는 무엇이든 즉시 실행에 옮기면 결국 그것을 해 낼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물론, 즉시 실행에 옮기면 무언가 얻을 수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나는 원하는 것을 그대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지.
내가 속한 곳에서 인정 받은 상태에서, 내가 관심있는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스타트업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치 손만 뻗으면 집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내가 홀로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뒤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온전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막 유스 시스템에 들어온 어린 선수가 호날두의 경기를 봤을때 이런 느낌일까? 이제 막 연습생을 시작한 연습생이 빅뱅의 무대를 봤을때 이런 느낌일까? 상상 속의 나는 호날두고 빅뱅이었는데, 현실의 나는 고작 리프팅 5개를 하는... 이제야 복식 호흡을 연습하는... 그런 작은 아이였던 것이다.
올해 1월. 회사를 나오면 뭐든지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오고 나니 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던 나는 그렇게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적 멘붕이 왔고, 식중독과 몸살 덕분에 2주간 앓아 누웠던 내가 어떻게 도밍고뉴스 Android 1.0을 오픈 할 수 있었을까?
결국은 사람이었다. 작년즘인가?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모조리 '숨김' 으로 보낸 적이 있다. 200여명의 내 친구들은 대부분 숨김 친구가 되었고, 지금은 46명의 친구만 내 친구목록에 있다.
지난 4개월간, 이 46명의 친구들을 모두 만났으며, 이들 모두가 내게 도움을 주었고. 아니, 내 연락처에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내게 도움을 주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도움1. 커뮤니티 친구들
대학교때 만든 커뮤니티가 있다. 5년간 지속되고 있고, 나는 이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정신적으로 굉장히 큰 힘이 되었는데 내가 힘들때 전화 한통이면 달려올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게 얼마나 심적으로 안정이 되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대학생 시절 가장 잘한 일은 이 친구들을 만나 지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든게 아닐까 싶다. 이들은 내가 회사를 나오자 앞다퉈 자신들이 밥값을 내겠다며 카드를 내밀었고, 형은 오빠는 너는 잘 할 수 있다며 힘을 줬다.
도움2. 친정회사
4년간 다녔던 나의 친정회사는 내게 정말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4년간의 이야기를 하라면 며칠 밤을 새도 부족하다. 또래의 동료들과의 추억, 상사와의 추억, 고객사와의 추억, 스마트팀과의 추억, 동기들과의 추억 등. 아마 앞으로도 수백명이 속했던 회사에서의 경험은 내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회사를 나왔지만 나는 계속해서 친정회사 사람들과 연락했다. 팀 사람들은 물론,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 상사들과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이들과 계속 이야기 할 수 있는 비법이라면... 나는 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이들은 내 소중한 동료들이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진심은 통하는 법. 이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어려움을 도왔다. 결정적으로 내 마지막 프로젝트의 유지보수가 필요하자 나를 프리랜서로 고용하여 일거리를 주었다. 재정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받고 있는 찰나에 내게 인공호흡기를 대준것이다.
앞서 칼럼에서도 말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연들이 나를 도왔다. 흔쾌히 잠자리를 내어준 동료부터, 내가 좀 더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좋은 계약을 해준 동료. 내가 오면 문제가 해결된다며 흔쾌히 나를 승인해준 고객사까지.
친정회사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 이 인연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더 크게 느낄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도움3. 예상치 못한 인연
퇴사를 확정한 뒤 쓴 글을 보고 한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왔었다. 4명의 또래들로 구성된 그 스타트업은 나를 반겨주었고, 우연히 만나게 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얻었다. 도밍고뉴스를 만들기 위해 그들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 업계에서도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들이다.
전에도 썼지만, 한 기획자 선배와의 만남은 서비스를 바라보는 내 관점을 많이 바꿔주었다. 책을 추천해주거나 기획서를 검토해주는 등의 도움을 준 이 선배는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안드로이드 앱 오픈 뒤에는 멋지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우연히 만난 이 선배와 주고 받은 이메일들이 모니터만 쳐다보았던 1, 2월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상암으로 출발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스위프트 스터디를 하기 위해 단체카톡방에 초대받았는데, 이 카톡방을 운영하는 운영자는 수십개의 카톡방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Node, Python, Swift, 스타트업, Android 등 여러개의 카톡방에 들어왔고 열심히 눈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는지 물어보게 되었고, 한 스타트업 멤버가 내게 제안을 했다. 자신의 사무실에 자리가 남으니 그냥 와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렇게 흥분될 수가 없었다.
이밖에도 주변에서 앱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며 컨설팅 제의가 들어오곤 한다. 커피 한 잔, 밥 한끼로 시작되는 경험 공유이지만,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이들은 나를 만나기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며 정말 고맙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내가 내 경험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공유하는데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훗날 내가 경험이 많이 쌓였을 경우 또 다른 기회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예전의 좋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될 지 모르겟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안좋은 추억을 함께한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사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이거다. 자본.
애초에 퇴직금만으로 도밍고뉴스를 시작했던 나는 월세와 학자금대출 덕분에 고정지출이 꽤 많은 편이다. 게다가 올해는 결혼식이 왜이렇게 많은지... 생각지도 못했던 지출이 줄을이었다. 물론, 이런 비용을 아끼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사람 노릇' 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앞가림은 물론, 가족과 지인도 챙겨야 하니 버거울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참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살기가 좋은 나라다. 치명적인 전제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만약 내가 자산이 1조원쯤 되는 부자라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집에서 독립한지는 5년째, 회사 기숙사를 나와 온전히 독립한지는 이제 10개월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서야 깨닫는 것 같다. 고정 수입이 없을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비용이 생길때 내 부담이 얼마나 큰지.
4년간의 회사 생활과 4개월간의 독립 생활을 하면서 나는 후자가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생활이 일반 몬스터라면, 독립은 보스 몬스터랄까? 하지만 역시, 보스몬스터는 높은 경험치와 좋은 아이템을 주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을...
5월이 시작되면서 정부지원사업들이 하나 둘 뜨고 있다. 3천만원부터 1억원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굉장히 많은 사업들이 있기에... 이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 하다.
이제 당분간은 도밍고뉴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등 사업화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단순히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닌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면, 기존의 생각을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비즈니스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시작될 것 같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라는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뭐... 끝났다 하면 그동안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얻기 보다는 그것을 밟고 다시 올라가는 식이다. 도대체 내가 올라가는 산이 무슨 산인지, 왜 올라가는건지 따위가 모호해진 듯 싶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산을 오르는 행위가 이제는 적응이 좀 되었다는 것, 재미를 붙였다는 것.
지난 4개월 간의 적응 기간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화 준비를 시작한다. 도밍고를 도밍고뉴스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