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 세계에 인과는 없다
회의주의자로 알려진 자연주의자, 데이비드 흄이다.
책 생각의싸움은 '어?', '뭐지...?', '응...?!' 의 연속이다. 최근 당일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연속돼 책을 펼칠 여유가 없었는데, 일주일 만에 펼친 챕터 역시 '어?', '뭐지...?', '응...?!'으로 마무리됐다. 자꾸 내 자아를 툭툭 건드는 책이다.
나는 사실 문학 등 텍스트를 보고 누군가의 해설이 들어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꼭 해설자의 시야가 저자의 시야와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치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정답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해설을 정답으로 읽는 것을 싫어한다.
헌데 생각의싸움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김재인 철학자님이어서 그런가 싶어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해본다. 가벼운 주제가 아니기에 좀 더 곱씹으며 내가 보는 철학자들의 모습도 떠올려보고 싶다. 헌데 책 내용이 내게 계속 울림을 준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흄' 엉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흄은 편파성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왜 편파성이 인간의 본성이냐? 인간 본성은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것 때문에 편파성이 형성됩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 같거든요. 그런데 우리 가족을 옆집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건 공감 능력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더 가까이 느끼고 멀어질수록 공감이 약해지는 게 공감 능력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어요."
흄은 '관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 자체는 '관념'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어떤 '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이 '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인상과 관념 두 가지뿐이며, 좀 더 생생한 것이 인상이고 덜 생생한 것이 관념이란다.
이게 좀 불편한 것은 결국 우리는 순간순간이 모인 메모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여러 관념을 모은 것 뿐이고, 내가 믿는 것 역시 그저 유사한 관념들을 모았기에 계속 유사한 관념을 모으려 움직이는 것뿐이다. 좀 더 불편한 것은 내가 믿는 대로 세상이 흐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상은 1회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늘 반드시 그렇다는 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게 필연적인 연결, 필연적인 결합과 관련해서 생겨나는 문제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상들, 즉각적인 경험을 들여다봐도, 그 경험들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확신을 얻을 근거가 없다는 거예요. 들뢰즈는 이걸 경험론의 비밀이라 부르면서, '관계는 항들 속에 없다'라고 요약합니다."
이게 흄이 '회의주의자'라 불리는 이유다. 텍스트 몇 줄로 사람 힘 빠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뭐든 해보려 아등바등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열~심히 해봐라~ 그렇게 안 된다는 것에 100원 건다.' 흄 형, 형만 아니었으면...
결국 우리가 완전한 앎을 추구할 수 없으며,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이 세계의 단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흄 챕터는 짧아서인지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세계 자체의 본모습이 대체로 한결같다는 데 '회의주의자'임을 설명하는 부분보다 '자연주의자'를 설명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 약하다. 그리고 이 정도로 자연을 띄웠으면, 오히려 유신론자에 가까워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연의 거대함을 더욱 크게 느끼다 보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되지 않을까? (흄은 무신론자라는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저자 김재인 철학자님은 대학 시절 흄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나는 맥빠지게 하는 캐릭터를 선호하지 않아서인지 정이 가지 않는다. 흄 형이 생각한 것처럼 인간은 그리 하등하지 않다 외치고 싶다. 혹시, 자신의 주장을 듣고 인간이 각성하길 원한 것이라면... 흄 형은 대단한 인간이다.
생각의 싸움 종합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