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살아 있으면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었으면 이미 없다
'쾌락주의'라는 단어는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방탕한 삶을 살며 '쾌락'을 추구하는 식의 쾌락이 아니다. 진정한 '쾌'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 이야기, 특히 '원자' 이야기는 무척 난해했다. 기원전 341년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를 짧게 설명하는 것이 무리였을지 모른다. 이 챕터는 대부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아쉬움이 있을 정도다.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데 여러 일에 쫓기는 신세다. 어쩌면 나는 쾌락주의와 먼 사람인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데서 멈추고, 그 바깥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 게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에피쿠로스가 진정한 쾌락을 추구했다는 말이 이제 이해됩니다. 쓸데없는 것까지 원하는 건 우리를 낭비하는 거고, 그것 때문에 고통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걸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평온한 상태, 희랍어로 '아타락시아'에 이르는 거죠. 마음의 평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입니다."
사람마다 캐릭터가 다르기에, 철학자의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겠다. 더욱이 쾌락주의는 불교가 아닌가 싶다. 마음의 평온을 위해 그저 이것도, 저것도 버리는 삶이 쾌락이라면, 나는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련다. 어차피 죽어 없어져 무로 돌아간다면, 살아 있을 때만이라도 강렬한 '유'로 살겠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달려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알게 되면 필멸도 즐겁게 된다."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종료되는데 어찌 아무것이 아닌가? 별일 없을 거라며 애써 눈 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서서히 끓는 물 속 개구리 같다. 그게 마음의 평온이라면, 나는 강렬한 발길질로 확실한 마감을 하겠다. 스스로 말이다.
생각의 싸움 종합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