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디자인은 해답과 미래에 대한 비전보단 불확실함만을 주었기에 요리를 하기로 결심한 후, 생각을 정리해 부모님께 이메일을 보내었다.
A4용지 3장 정도 나왔던 것 같다.
디자이너로써 미래의 불확실함. 전직의 각오와 다짐, 최종적으로는 해외 이주.
메일을 보내고 며칠간 초조함에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미술도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었고 내가 좋아했던 것인데 지금은 왜 이런지 하는 고민과 후회.
대학 생활은 즐겁지 않았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오니 이리저리 해야 할 것도 많았고, 문화 충격도 있었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음주가무와 TV시청을 좋아하지 않으니 타인과 접점이 없었다.
고독을 즐기는 특성상 대학 생활은 번잡스러운 느낌이었다. 다들 뭐 그리 같이 하는 것이 많은지 교양도 동아리도, 다들 이것저것 다 같이 듣는 와중 나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교양 중에서 내가 원하는 교양을 골라 들었다. 상상하던 대학생활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평소와 다름없이 홀로 지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단합이라는 명목의 음주가무가 추가된 것 빼고는. 배움이라도 충족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전공수업 시의 여러 부정적 경험으로 마음은 떠나 있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받았다. 요리, 확실하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예'라고 했다.
학력의 부제가 장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부모님은 졸업을 권유하셨다. 알겠노라 말씀드리곤 그 후로는 요리 일변도. 도서관에서 요리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요리 박람회도 찾아다녔다. 막연히 신났던 것 같다. 미술을 처음 시작 할 때의 두근거림. 지금은 잊어버린 두근거림. 교수들도 찾아가 요리를 할 생각이고 부모님은 졸업을 원하신다, 출석이 좋지 않더라도 졸업에 필요한 최소 학점이라도 받을 수 있느냐 여쭈었다. 그다지 좋은 대답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학기 중의 방황,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 전화를 받았다. 해외 갈 거냐고, 갈 거라고, 그러면 빨리 시작하자고.
시작은 유학원. 2009년 당시도 지금도 그러리라. 어학원 어학연수 + 호주 르 꼬르동 블루 입학.
한 달간 IELTS를 독학해 보았지만 평균 5.0으로 입학에 필요한 점수가 부족했다.
본인의 영어도 어느 수준인지 알지 못하였기에 어학원과 연계하여 EAP -English for Academic Purpose -
코스를 듣고, 코스를 일정 점수 이상으로 수료 후 요리학교에 입학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2010년 5월 어느 날
눌러 담은 이민 가방 하나, 호주행 편도 티켓.
그렇게 호주 생활이 시작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