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버프를 한가득 받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응을 핑계로 자유의 탈을 쓴 방종 하에 허비해 버린 1학년 때와 다르게 전공도 교양도 열심히 들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이제까지의 인생과 별다름 없는 점수를 받았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
게임으로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웠다. 내일 목표를 대충 머릿속에 그렸다. 이 사냥터에서 이 템을 먹을 때까지.
이 렙이 되면 템 습득 유무와 상관없이 다음 사냥터로.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행 상황이 그려진다. 인생 테크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막연했다.
열심히 해서. 학점 받고. 열심히. 학점. 열심히. 학점.
그 후엔?
불이 꺼진 새벽 2시의 방은 반쯤 열린 맨홀 속처럼 칠흑 같았다. 인생 테크도 어두웠다.
고등학교 입시미술 3년 대학 디자인 1년 반. 아깝다는 생각보다 좆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미래가 시궁창이다. 더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일주일을 고민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요리. 요리를 하자'
맞벌이 부모님의 영향인지 어릴 때부터 간단하게나마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끼니를 위해 만드는 간단한 수준의 음식. 어머니 저녁을 도와주는 수준의 요리.
중학교 때는 티브이에 나오는 제이미 올리버가 멋있어 보였다. 멋있어 보이는 음식을 간단히 만들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요리계의 밥 로스 같았다.
왜 요리가 좋았는지 모르겠다. 미술과 비슷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감각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단순히 요리가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미술계의 사기꾼 밥 로스. 요리계의 사기꾼 제이미 올리버. 쉬워 보이지만 전혀 쉬운 게 아니다.입대 후 신병 교육대.
수양록 작성 중인 우리에게 조교가 물었다.
"취사병 할 사람 "
뭐라도 배우고 나가야지 하는 마음에 손을 들었다. 그렇게 나의 2년은 땀과 짬으로 얼룩진 2년이 되었다.
4명의 취사병이 330인분의 삼시 세끼를 만들었다.
일과는 간단했다.
새벽 4시 20분 기상. 아침 준비 후 휴식. 점심 준비 후 휴식. 저녁 준비 후 세면. 10시 취침.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잠을 자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에,
눈을 뜨면 오늘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일어나면 삽질로 곱은 손가락을 주무르고 주먹으로 때리며 일어났다. 국은 3~40리터. 볶음 고기류는 적으면 50, 많으면 100킬로까지 나갔다. 튀김은 40리터 기름에 2~3시간을 튀겼다.
한 여름에는 가마 앞의 온도가 70도까지 올라갔다. 선풍기 하나로 버티며 일했다. 더위에 몇 번 쓰러지기도 했다. 혹한기 훈련 때는 셋이서 천명 가까이의 식사를 준비했다.
단순히 밥만 했으면 나았으리라.
주방을 매일 쓸고 닦고, 냉장고에 끼이는 성애를 이틀에 한 번씩 제거하고, 주에 1번씩 대대에서 인력을 공급받아 취사장 바닥을 닦고, 지붕 위로 올라가 석탄 같은 그을음을 제거하고. 겨울에 기름으로 하수도가 막히면 맨홀에 들어가 뚫고. 1종 계원이 동기여서 부식 수령 및 선입 선출 창고 정리.
삽으로 주식 볶는 사진, 밥하는 사진 그리고 야외 취사 하는 사진.나는 자원했지만, 일반적으로 취사병 차출 우선순위는
조리과 > 영양학과 > 요식업 알바 수준의 단계로 차출된다.
조리과 밑으로는 직접적인 조리랑 관련도 없지만 미대 나오면 연병장에 줄 그으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업장에서 일하다 온 선임들이 간부한테 하던 말이 있다.
"사회에서 이렇게 하면 월 200 받아도 안 할 겁니다."
이렇게 요리의 기본이 되는 선입 선출, 위생에 관한 모든 것은 조리학교 이전에 군대에서 배웠다. 아주 힘든 방법으로.
4년 반의 미대 입시, 디자인과 생활을 마치고 요리를 해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을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