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그리고 디자인

by 오타쿠마

예술 계통의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미술, 음악 시간이 좋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다른 성적은 평균이었지만 가창, 미술은 항상 만점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성악해볼 생각이 있냐 물어보셨다. 찰나의 순간, 소질이 있었으면 진작 뽑혔을 것이고, 잘하지도 못 하는데 진로로 선택해봐야 성가대에 일 하게 될 것 같았다. 기각.


부모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셨다. 당시 미술이 좋았기에 미술, 디자인이라 답했고, 남들보다 늦게 입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묘는 즐거웠다. 흑색 4B연필 하나로 단순히 검은색이 아닌, 단색조의 세상이 펼쳐졌다.


연필 가루, 연필 나무 냄새 가득한 공간. 이젤과 종이가 가득한 공간. 조형물로 가득 찬 공간. 고대 유적지 마냥 석고상들로 가득한 공간.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아리아드네. 호메로스.


입시 준비를 하며 시작된 발상과 표현은, 즐거운 미술을 의무로 가득 채웠다. 계조 표현을 위해 무수히 갈려나간 파스텔은 콧구멍과 갈라진 손가락 끝을 가득 채웠다. 색채, 형태 표현이 좋지 못했기에 직선 계통의 무기물을 주제에 끼워 맞추는 입시 준비. 대학 전공도 거기에 맞추어 산업 디자인.

발상과 표현 입시준비 당시의 손 상태

늦게 시작한 미술 실력은 성적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집을 떠나고 싶었던 본인의 의지와 수도권 대학 합격자를 원하는 학원의 의지가 맞물려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1 지망 불합격, 2 지망 불합격, 3 지망 합격


대학은 혼란스러웠다.


발상과 표현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름 즐기며 했다면 산업 디자인과의 수업은 이때까지 했던 미술과 너무도 동 떨어졌다. 거기다 시대착오적 학칙과 허접스러운 커리큘럼의 환장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디자인을 하는지 사기를 치는지,

작동 구조는 1도 이해하지 않고 디자인을 한다.


물질, 정신적 낭비 속 기억나는 것은 전역 후 주방칼 디자인. 2년간의 취사병 경험 속에서 겪은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칼날의 등은 각 없이 둥근 마무리로. 손잡이와 칼날이 맞닿는 부분도 유선형의 마무리 그립감을 위해 음각으로 나선 형태의 문양. 만족스러워하며 제출한 러프 스케치와 디테일 설명을 수없이 되돌려 받으며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왜?"


실제적 경험을 억눌러 나온 결과물은 SF 영화의 외계인 비행선처럼 기형적인, 칼로써 성립조차 되지 않는 형태.


디자인은 실용성과 미적인 요소가 맞물려야 된다 생각한다.


이쁜 쓰레기를 만들어서도, 단순히 기능에만 치우쳐서도 안 되는, 고객이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열린 지갑을 만족하면서 닫을 수 있는 그런 제품. 개인적으로는 이케아가 본인 디자인의 지향점이었다.


장고 끝에 시작한 요리. 요리사로 5년간 봐 왔던 수많은 칼들은 본인 생각하던 형태를 하나씩은 지니고 있었다.


유선형의 마무리와 그립감을 위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입문용 막 칼이라고도 불리는 글로벌 나이프. 칼등에 곡선형 마무리는 노량진 한칼의 연마에서 찾을 수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다. 본인이 잘 못된 것이었는지. 당신이 잘 못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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