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자문위원

by 오탁구

교실에서 선생님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진 자리만 찾아다녔다.


대학생 때 연구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교수님들과 편히 지내는 친구들이 낯설었다. 지금도 무슨 강의라도 수강하면 무조건 뒷자리에 앉는다. 그런 내게도 자주 뵙는 은사님이 한 분 계신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시절, 대학원에서 처음 그분을 만났다.


취미를 탁구라고 하자 그분도 좋아하신다고 했다. 수강생들끼리 언제 날 잡고 학교 앞 탁구장에서 시합을 해 보자고, 응원 오는 학생들에게는 밥을 사 주신다고. 수업시간에 서너 명이 오겠다고 했지만, 나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보다 초보였고, 그분 실력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공 옆구리를 긁어서 회전을 주는 횡회전 서브가 일품이었다. 공을 겨우 받아넘기면 높게 떠올라 바로 공격을 당했다.



한 학기 동안 우리는 종종 탁구를 쳤다. 수업 시간에 그분은 가끔 시합 이야기를 꺼내셨고, 학생들은 이번에는 누가 이겼냐며 결과를 궁금해했다.


어느 날 탁구 시합이 끝나고 저녁을 먹다가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알고 보니 까마득한 고등학교 선배셨다. 이후 그분은 탁구 치는 다른 제자까지 불러서 탁구 모임을 만들자고 하셨다.


10년 전 시작한 모임은 지금까지 다달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초보였던 한 분은 지금은 직장 탁구 1위가 되었다고 모임 때마다 자랑하신다. 나는 구질이 까다로운 B선생님과 라이벌 관계인데, 우리는 매번 팽팽한 경기를 치른다.


그냥 교수님이었다면 여전히 교수님을 어려워했을 것 같다. 선배님이라 덜 부담을 갖는 걸까? 아니다. 결국은 탁구였다. 같이 탁구 치는 분 중에 어려운 사람은 없으니까. 이후 나는 레슨을 받아 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땄고, 어쩌다 탁구를 즐기시던 그분은 최근에서야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학교를 은퇴하시고 지방으로 내려가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분이 계신 곳으로 찾아뵙거나, 그분이 서울에 올라오실 때 일정을 맞춰 모임을 갖는다. 가끔은 기독교 신앙의 선배로서 기도하시고 묵상했던 말씀을 듣기도 한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마다 '기관 비전과 사명'을 강조하셨다. 한동안 우리 기관 자문위원으로 모셔 사업 방향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하다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여쭤본다.


얼마 전 해외 출장 일정을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 “출장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보내 주셨다. 철들고 나서는 어른들께 용돈을 드린 적은 있어도, 용돈을 받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용돈으로 몽골에 가서 동료들에게 저녁을 샀다.


그분은 내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신다.




* 다음화는 '돈을 잘 쓰는 사람이 진짜 부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전 11화아내의 싸이월드와 남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