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입양을 생각한다면..
곧 20대 초반의 사람들은 생전 겪어보지 못한 사회 경제적 위기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기사를 보았다. 70년대 경제 부흥과 80년대 민주화 시기를 거쳐 최근 20~30년간 우리는 어느 세대도 경험해보지 못한 물질적 혜택을 맛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를 들락날락할 수 있었고 거리엔 외제차들이 수두룩하다. 한국 전쟁 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피땀을 흘린 세대는 이제 경제력을 잃은 노년기를 보내고 있고, 90년대 말 IMF를 극복해야 했던 세대는 꼰대 취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외면받고 있다. 그리고 고난과 위기를 글로 배운 세대의 삐딱한 측은지심은 가끔 크고 작은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건강을 생각한 식습관이 중요시되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유기견'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 아직도 펫 샵에서 품종 견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간 유기견 보호 단체나 구조되어 공고된 아이들을 안락사 전에 입양하여 가족으로 맞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상도 못 한 여러 이유들로 파양, 학대, 재 유기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까망이와 영옥이를 데리고 온 보호단체는 국내 민간 유기동물 보호단체 중 규모가 크고 매우 투명하게 관리되는 비영리 단체 중 하나이다. 대형 보호단체들 중에도 이미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곳도 있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 후원해왔고 자주는 아니지만 직접 봉사를 해봤고 그리고 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 단체는 나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 말하고 싶다. 놀랍게도 이 단체는 세 곳의 보호시설 관리부터, 아이들의 건강 관리 그리고 국내외 입양 및 임시보호 심사까지 모두 보수를 받지 않는 개인회원들에 의해서 운영된다. 모든 스테프들은 본업이 있고 개인 시간을 쪼개서 단체 운영을 위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쉬는 날엔 직접 쉼터로 달려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봉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회원들이 모이다 보니 잊을만하면 사건사고가 터진다.
최근 단체를 시끄럽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 아이를 입양 전제 임시 보호한 가정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아이를 처음 소개했던 지인에게 보냈는데,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돌봤던 지인이 입양 심사에서 승인받지 못하게 되면서 아이를 단체에 돌려보내게 된 것이다. 입양 승인을 못 받은 지인은 SNS를 통해 단체를 비난했고 덩달아 그 지인의 SNS 친구들이 글을 퍼 나르며 일파만파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회원들 간 마찰로 단체 내부가 시끄러워진 것을 넘어 외적으로 단체의 진정성마저 비난받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단체의 입장을 이해한다. 단체를 오랜 시간 지켜봐 온 회원들에게는 이미 여러 차례 겪어본 일이라 피로감이 들 정도이다.
아이를 입양 또는 임보를 보내기 위해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단체의 권한이다. 이미 수년간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가족을 찾아 보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해왔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아이의 생사와 직결된 문제로 번진 일도 수없이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죄책감과 아픔은 오롯이 운영진들의 몫이었다. 그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살구를 구조 후 입양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나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본인이 살구를 키우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 한 입양 후보자가 있었다. 그분은 입양 신청서를 쓰기 전 살구를 직접 보고 싶어 했고 일정에 맞춰서 운동장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와이프가 생각하는 입양가족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고 입양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 이후 그분은 살구를 직접 보기도 했고 대화도 원활했음에도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는 사실에 문자와 SNS에 서운함을 가득 토로했다.
카페의 한 회원은 입양 심사하는 스테프들을 인터뷰어(interviewer)라고 표현했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스테프들은 보호단체에서 정한 기준에 맞춰 심사할 뿐이다. 내가 취업을 위해 인터뷰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회사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면접에서 탈락한다. 내가 면접에서 탈락한 후 왜 내가 조건에 맞지 않는지, 그 기준이 뭔지, 내가 왜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없는지 답을 요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면접 전에는 누구나 본인이 이 회사에서 가장 적합한 인재라 생각한다. 심지어 한 생명이 오가는 일이니 입양 신청자를 위한 반려견이 아닌 반려견을 위한 가족을 찾는데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구조자이고 보호단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열악한 환경의 쉼터에서 살게 하느니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을 때 한 가정에라도 입양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둥 까다롭게 심사하는 단체를 비난한다. 이 내면에는 '유기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심어져 있다. 유기견은 이미 버려졌고 상처받은 아이들이니 이 아이들을 거두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불쌍한 아이들을 책임지겠다는 지나친 사명감이 우월감으로 번져 도덕적 선민의식을 갖는 순간 그 아이의 삶은 그저 나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모든 반려동물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때 스스로 준비가 되어있는지 충동적인 결정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하지만, 특히나 유기동물을 입양할 땐 지나친 측은지심 때문이 아닌지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유기동물 대신 미지(未知) 동물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버려지거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라는 의미 대신 출생과 행적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유기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가져와 아이들의 무분별한 입양과 파양으로 인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