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 이야기
구조된 유기동물 중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없지만 우리 부부는 흰검 바둑이(젖소 멍이)에 유독 관심을 갖는다. 누군가는 품종 견만 찾는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봉사던 후원이던 일단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게 우리는 젖소무늬 강아지인 것이다.
얼마 전 행동하는 동물사랑 단체에 ‘영우’라는 아이가 소개되었다. 영우는 단체의 연계병원 앞에 유기된 아이 었다. 발견 시 심장질환이 의심되었고 피부도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하게 말라 기력이 쇠한 아이 었다. 성치 않은 몸에도 사람이 너무 좋아 끊임없이 봉사자 이모들의 사랑을 받길 원했다고 한다. 그런 영우에게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호소라는 공간은 오히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특히 어리지만 덩치가 큰 아이들은 7킬로의 작은 영우를 이모들 곁에서 쉽게 밀어냈다. 게다가 영우와 같은 단두종(주둥이 모양이 짧은 아이) 아이들은 더운 여름에 호흡하기 힘들어했는데, 때문에 유독 기운 없어 보이던 영우의 여름 단기 임보가 긴급하게 진행되었다.
우리 부부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사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살구까지 세 마리를 케어해봤기에 단기 임보를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특히 영우는 우리가 좋아하는 젖소 멍이가 아닌가. 하지만 이직을 하게 되면서 곧 재택이 아닌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고 당장 데려온다 하더라도 며칠 후 약속이 있어 집에 영우를 혼자 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틀의 고민 끝에 일단 하루라도 빨리 영우를 편안한 환경에 데려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급히 임보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우가 너무 힘들어했기에 긴급하게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며 임보 상담 전화가 왔다. 까망이 영옥이를 단체에서 데려왔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상담이 오래 걸리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수월하게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집을 비우는 일정 때문에 고민했지만 협의 끝에 다음날 바로 데려오기로 했고 이동 봉사자도 빠르게 찾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이 온다는 생각에 뭔지 모를 설렘과 즐거움으로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업무 하던 중 잠시 통화가 가능한지 문의하는 단체 매니저의 문자를 받았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있었지만, 영옥이의 입양 전환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기에 이 부분 때문에 연락 왔을 거라 생각했다.
영우가 조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은 이야기에 너무 놀라 온몸이 얼어붙었다. 영우가 보호소에서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며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서 급하게 CPR을 진행했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이었다. 발견될 때 의심되던 심장질환이 충분히 사랑받고 관심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로 작용해 급성으로 호흡곤란이 온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사무실 구석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다수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관리할 만큼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간혹 문제가 발생한 아이들이 조기에 발견된 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겨 절박한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홍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은 구조되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악화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빤히 바라보던 슬픈 눈망울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갈망이었다는 걸 미처 알아보지 못했고 보고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또 눈물짓게 된다. 특히나 영우 곁에 있던 봉사자들은 죄책감과 절망감에 크게 힘들어했다고 한다. 내일이면 편안한 공간에서 집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날 저녁 영우의 마지막 가는 길에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만져주지도 못했지만 잠시라도 가족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아이 영우. 그 아이가 무지개다리 건너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입양신청서를 제출했다. 단체 매니저님께 부탁드리면서도 이미 아이가 떠난 후에 내 마음 편하고자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자책하기도 했다. 뒤늦게 입양 승인이 났고 영우는 내 가족의 이름으로 무지개다리 건너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다.
삼촌이 한 발 늦어서 미안해 영우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