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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리 Apr 01. 2022

둘이면 귀여움도 두배

영옥이 이야기

켄넬을 치워버렸지만 까망이는 몇 주가 지나도 거실 한쪽 구석에서 불편한 자세로 나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까망이가 길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같이 몰려다녔기 때문에 다른 강아지와 함께하면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까망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친구를 임시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까망이의 파트너가 될 친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오게 될 친구의 성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전한 합사 가능 여부였다. 처음엔 까망이의 또 다른 아들인 정남이라는 아이를 고려했었다.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알아보기만 한다면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까망이 못지않게 겁이 많은 정남이마저 같이 있게 되면 둘 다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을 매우 좋아하되 까망이와 연령이 비슷한 아이를 찾게 되었고 그러던 중 영옥이에 대한 홍보 글을 보게 되었다. 영옥이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입양뜰(보호단체의 입양 카페)에 사람이 오면 껌딱지처럼 붙어서 그렁그렁 한 눈으로 애정을 갈구했다고 한다. 까망이와 비슷한 시기에 심장 사상충 치료를 받아 이미 병원에서 만나본 사이라고 하니 합사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만 조용히 있길 좋아하는 영옥이가 어린 강아지들이 많은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다. 특히나 우리가 좋아하는 흰검의 바둑이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2020년 마지막 날 우리 집에 온 영옥이는 지금까지 큰 딸 노릇을 하며 소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켄넬을 열자마자 쏙 들어오는 영옥이.. 오빠 집에가자!

영옥이는 정말 놀랍게도 우리 집에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 같았다. 입양뜰에서 처음 만난  켄넬을 앞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갔다.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고 빨리 조용한 집에서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거실에 울타리를 치고 까망이와 인사를 시켰다.  아이가 무덤덤하게 서로의 냄새를 맡은  각자 편한 자리로 돌아가 쉬는 것을   조금은 안도되었고  시간  울타리를 걷어냈다.

영옥이가 오자 한결 편안해진 까망이

실외의 춥고 건조한 환경에 오래 노출된 유기견들은 대부분 기관지가 안 좋다고 한다. 올 때부터 기침을 자주 했던 영옥이는 몇 주간 약을 먹으며 산책 없이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산책을 시작하면서 영옥이는 실외 배변만 하기 시작했다. 영옥이는 산책하면 전혀 다른 강아지가 된다. 집에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푹신한 침대나 소파에서 몇 시간이나 잠을 잔다. 활동량이 적고 밥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살찌기에 최적화된 성격이다. 그런 아이가 산책을 할 때는 정말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고 마킹도 하고 뛰어다닌다. 그리고 다른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해 공격적으로 으르렁거리거나 짖는다. 그래서 산책 중 다른 반려견과 마주칠 때면 항상 영옥이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까망이에겐 절대 하지 않는 공격성을 특히 산책 중이나 운동장에서 보이는 것을 보니 본인보다 먼저 집에 와 있던 까망이는 내가 받아들여야 할 가족이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그 공격적인 모습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다른 사람이나 반려견, 자동차, 오토바이보다 산책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옥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듬직한 망구의 단짝

영옥이도 까망이 만큼이나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다. 영옥이 임보 후 보호단체 카페를 통해 한 회원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과거 영옥이는 파주의 한 공장에서 키우던 '요미'라는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성화를 시키지 않아 계속해서 새끼를 낳았고 감당이 안 되자 주인은 영옥이를 지인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탈출했는지 아니면 유기되었는지 영옥이는 이후 길에서 구조되었고 보호단체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메시지를 주신 분은 공고 시에 추정된 나이인 2살 보다 더 많은 최소 5살 이상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은 영옥이가 낳은 아이 중 둘을 지금 키우고 계셨고 그 공장에서 일할 때 오가며 영옥이를 보살펴주셨던 분이었다. 전달받은 과거 사진 속엔 지금보다 조금 날씬하고 어린 영옥이와 영옥이가 낳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보호자라는 사람의 무책임과 무관심 속에 계속 아이를 낳았고 유기견이 되어 요미에서 영옥이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몇 개월 후 영옥이의 딸과 함께 메시지 주셨던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낳은 후 한동안 함께 지냈던 딸과 오랜 시간 보살펴주셨던 분을 만나는 자리라 너무나 설렜지만, 놀랍게도 영옥이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딸과 상봉을 하자마자 둘 다 동시에 싸우자고 달려들었다. 아, 영옥이 딸이 맞구나 싶었다.

영옥이가 유기견이 되기 전 영옥이 아이들과 요미(영옥이 옛 이름) 모습

까망이에게 사람과 사는 것을 가르쳐줄  있도록 영옥이를 임시보호로 데리고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옥이의 입양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까망이가 아닌 나와 아내를 위해 영옥이가 있어줘야만   같다. 보고 있자면 안아줄 수밖에 없는 눈망울, 안을 때마다 끙끙대는 소리 그리고 옆에  붙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묵직한 엉덩이까지.  인생 한편에 자리 잡아준 영옥이에게 정말 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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