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이 이야기
켄넬을 치워버렸지만 까망이는 몇 주가 지나도 거실 한쪽 구석에서 불편한 자세로 나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까망이가 길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같이 몰려다녔기 때문에 다른 강아지와 함께하면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까망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친구를 임시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까망이의 파트너가 될 친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오게 될 친구의 성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전한 합사 가능 여부였다. 처음엔 까망이의 또 다른 아들인 정남이라는 아이를 고려했었다.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알아보기만 한다면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까망이 못지않게 겁이 많은 정남이마저 같이 있게 되면 둘 다 구석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을 매우 좋아하되 까망이와 연령이 비슷한 아이를 찾게 되었고 그러던 중 영옥이에 대한 홍보 글을 보게 되었다. 영옥이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입양뜰(보호단체의 입양 카페)에 사람이 오면 껌딱지처럼 붙어서 그렁그렁 한 눈으로 애정을 갈구했다고 한다. 까망이와 비슷한 시기에 심장 사상충 치료를 받아 이미 병원에서 만나본 사이라고 하니 합사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만 조용히 있길 좋아하는 영옥이가 어린 강아지들이 많은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다. 특히나 우리가 좋아하는 흰검의 바둑이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2020년 마지막 날 우리 집에 온 영옥이는 지금까지 큰 딸 노릇을 하며 소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옥이는 정말 놀랍게도 우리 집에 올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 같았다. 입양뜰에서 처음 만난 후 켄넬을 앞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쏙 들어갔다.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고 빨리 조용한 집에서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혹시 생길지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거실에 울타리를 치고 까망이와 인사를 시켰다. 두 아이가 무덤덤하게 서로의 냄새를 맡은 후 각자 편한 자리로 돌아가 쉬는 것을 본 후 조금은 안도되었고 몇 시간 후 울타리를 걷어냈다.
실외의 춥고 건조한 환경에 오래 노출된 유기견들은 대부분 기관지가 안 좋다고 한다. 올 때부터 기침을 자주 했던 영옥이는 몇 주간 약을 먹으며 산책 없이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산책을 시작하면서 영옥이는 실외 배변만 하기 시작했다. 영옥이는 산책하면 전혀 다른 강아지가 된다. 집에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푹신한 침대나 소파에서 몇 시간이나 잠을 잔다. 활동량이 적고 밥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살찌기에 최적화된 성격이다. 그런 아이가 산책을 할 때는 정말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고 마킹도 하고 뛰어다닌다. 그리고 다른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해 공격적으로 으르렁거리거나 짖는다. 그래서 산책 중 다른 반려견과 마주칠 때면 항상 영옥이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까망이에겐 절대 하지 않는 공격성을 특히 산책 중이나 운동장에서 보이는 것을 보니 본인보다 먼저 집에 와 있던 까망이는 내가 받아들여야 할 가족이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그 공격적인 모습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다른 사람이나 반려견, 자동차, 오토바이보다 산책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옥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영옥이도 까망이 만큼이나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다. 영옥이 임보 후 보호단체 카페를 통해 한 회원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과거 영옥이는 파주의 한 공장에서 키우던 '요미'라는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중성화를 시키지 않아 계속해서 새끼를 낳았고 감당이 안 되자 주인은 영옥이를 지인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곳에서 탈출했는지 아니면 유기되었는지 영옥이는 이후 길에서 구조되었고 보호단체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메시지를 주신 분은 공고 시에 추정된 나이인 2살 보다 더 많은 최소 5살 이상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은 영옥이가 낳은 아이 중 둘을 지금 키우고 계셨고 그 공장에서 일할 때 오가며 영옥이를 보살펴주셨던 분이었다. 전달받은 과거 사진 속엔 지금보다 조금 날씬하고 어린 영옥이와 영옥이가 낳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보호자라는 사람의 무책임과 무관심 속에 계속 아이를 낳았고 유기견이 되어 요미에서 영옥이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몇 개월 후 영옥이의 딸과 함께 메시지 주셨던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낳은 후 한동안 함께 지냈던 딸과 오랜 시간 보살펴주셨던 분을 만나는 자리라 너무나 설렜지만, 놀랍게도 영옥이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딸과 상봉을 하자마자 둘 다 동시에 싸우자고 달려들었다. 아, 영옥이 딸이 맞구나 싶었다.
까망이에게 사람과 사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도록 영옥이를 임시보호로 데리고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옥이의 입양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까망이가 아닌 나와 아내를 위해 영옥이가 있어줘야만 할 것 같다. 보고 있자면 안아줄 수밖에 없는 눈망울, 안을 때마다 끙끙대는 소리 그리고 옆에 꼭 붙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묵직한 엉덩이까지. 내 인생 한편에 자리 잡아준 영옥이에게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