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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비 Jul 09. 2018

행복을 느끼는 것에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서로의 행복감을 진심으로 바라는 한국 사회가 오려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주목받지 않았을 뿐,
그 누구보다 멋진 감정들로 인생을 채워가고 있었다.


사람은 대부분 현실적인 내용으로
머릿속을 채우며 살아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는 걱정으로 채우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불안으로

누군가는 미래 계획 고민으로

누군가는 슬픔으로


그러고보니...

행복으로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볼 수 없었다.


꼭 무언가를 힘들게 겪고나서야 성공을 하고 행복이 따라왔을 때의 장면들만 알고 있다.


분명 행복함으로 하루를
가득 채워가고 있는 사람도 많을텐데 말이다.


이 글에서는 이 의문에 대한 사유를 적어보려한다.



그리고 나는 6월의 어느 날,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 것처럼 1초 1분이 모두 그런 선물들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냥 문득 나의 감정은 오롯이
행복감으로만 가득차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정리해 놓은 방.

아침을 싱그럽게 깨울 수 있도록 사놓은 비타민 음료.

멀쩡한 사지가 있어서 신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옷.

.

.


내일 아침부터는
나의 계획, 말과 행동으로 충분히

원하는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는
당연한 현실에 기쁘고 감사했다.


포근한 잠자리가 곁에 있었고

읽을 수 있는 재밌고 유익한 책들과 정보들이

앞으로도 가득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에 행복감이 물들자
감사함이 올려졌다



어떤 것이 행복이고 감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행복감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그것도 아주 최상으로 느껴본적이
많지 않았던 요즘이었다
.

그저 기분이 평균보다는 좋은 정도?

그 외에는 대부분 일, 할 일, 해야할 일~

일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갑자기
별 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행복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막힘없이 마음껏
" 기분이 좋다. 너무 행복하다. "
라고 이 순간을 만끽하는 나 자신에 놀라웠다.


6월 초부터 명상을 시작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유도하는 명상의 효과가 나타난걸까..

내 머릿 속에서는 별별 추측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니
친구들, TV, 길거리 그 어느 곳에서도
행복감으로
하루를 가득 보낸 이야기를
접하기 쉽지 않았다

 


행복감은
행복한 표정,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한

디지털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그마저도 ...

여행지에서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
이쁜 옷, 멋있는 여행 장소만이 나타날 뿐


그래도 그런 사진 하나에 나도 기분이 좋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끔은 이런 사진이 올라오면 행복한 척한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더러 있던데

그분은 혼자서는 행복함을 느낄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다.

이렇게 누군가의 행복을 비꼬는 사람들 때문일까.


"나는 이날 하루종일 행복감에 취해서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다." 라고

행복한 감정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지극히 드물었다.

SNS나 책을 보더라도
고민과 불안함으로 몇 시간을 채우는 것이
일상인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내 안의 감정 중에서

좋은 감정만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 방해를 받을 이유가 없는

집에서조차, 혹은 내가 편안한 순간에서조차


왜 행복감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을까?


행복감을 마음껏 누리는 것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빨간색과 파란색처럼
거리가 먼 이야기다.

내 행복을 표현하지 않으면 누리고 있어도

티가 안날 수 밖에 없다.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제대로 알 수 없듯이.





마치 축제같기도 하고

햇빛에 눈이 부시는낙원 같기도 한

이 밝은 감정을

누가 들춰보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껏 느끼면.

현실적이지 않아보이고

철이 없어보이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처럼
거만해보인다는...


사회에서 무의식 중에 심어놓은
허황된 자물쇠 같은 편견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어릴 적부터
은연 중에 타인과 경쟁을 강요당해온 한국사람들은
곁에 있는 친구가 기분이 안좋은 일이 있는 시기에는

자신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겸손의 미덕이라 생각했다.

특히나 '눈치'가 생존수단인 분위기에서
생각 뿐 아니라 감정상태가 다름을 드러내는 것
범죄를 저지르는 것 마냥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너와 같아
그리고 내 감정도 너와 같아 ^^
라며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
사회 집단 소속감의 욕구를 이루는 방법이었다.
안그런 집단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과거에는 분명 '튀지않음'이
집단소속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나의 감정과 달리
내 친구의 감정이 행복한 일은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라
경계하게 되고 의문을 품게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생각되었다.

필자에게는
 친구가 행복해할 때 진심으로
함께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
더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사람"
죽을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기준이 있다 .

왜냐하면 그만큼 상대를
나의 사람, 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가치관의 사람이 소중한 이유는
 타인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동일해야한다고 스스로에게도 친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줄줄 알고
나와 공감해야해! 라는 무언의 감정갑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이 잘 되는 꼴을 배아파하는 사람들이
유독 한국에 많다고 느끼는 나는

외부의 것, 외부의 물질로 

명예와 성공, 행복을 표현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외부의 물질로 동질감과 성공을 표현한다고 믿는 곳에서는

외부 물질 도움 없이 스스로 만들어낸 행복한 감정은

이해가 안가는 것이고, 독특한 것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다.


만약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외부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된다.

자기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부정적인 감정보다
나에게 더 소중한 "행복감"을 

더 많은 양으로
더 많은 횟수로 느껴보자.
매일 하는 것에 도전하자.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듯 

좋은 생각과 행동이 좋은 결과를 끌어당긴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 눈부신 젊음의 매력들을 

진지충, 관종이라는 단어와 같은 껍데기들로 숨겨두지 말자.



지금 머릿 속에 떠오르는 화려한 색채들처럼 빛나는 아이디어들을 마음껏 적어내려가보자.
그것을 당장 일기장이든 블로그든
그 어느 적당히 보존될만한 곳에 적어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보관해두자.







당신은 그저 당신만이 펼칠 수 있는 멋진 재능, 

멋진 감정, 멋진 생각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어디있을까.


그것만으로도 매일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축하를 보내도 될만큼 아름다운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행복감을 마음껏 누리는 날들을 겪어보고

그런 날들을 더 많이 늘려가자.

강조해서 적고 싶은 이야기라서 또 반복해 적어본다.




그렇게

누군가는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행복감에 가득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친근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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