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바꾸기 힘든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그 아기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렇게 자라 아이가 되고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하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이 레파토리는 우리가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을 뿐이지
실제로 이렇게 단순하게 자라온 성인들은 주변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들도 수 없이 많고
사랑을 받더라도 한번쯤 차별을 부모에게 느꼈을 수도 있고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할 때 칭찬 대신 핍박과 강요를 받은 사람들도 많다.
마냥 손톱 크기의 상처 하나 없이 자란 어른은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 상사의 눈치에 맞게 살아야 내가 안전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보수적인 회사문화에 녹아들어가 나 자신을 없애며
몸만 자란 어른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그런 많은 어른들을 들여다보면
사랑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내 마음을 소중하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그 과정이 멈춘 날로부터 수북히 쌓여있다.
이처럼 따뜻한 감정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나에게 '기분나쁨, 무시당함, 비웃음 등'을 선사한 이들에게
그런 따뜻한 마음에 대한 욕망을 지우고
사회생활, 착한 아이, 안전한 선택의 가면을 써
그 상황이 계속 진행되도록 놔두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이 필자도 다수 있었고, 다행히
이제는 그것이 먼 과거의 일로 남아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사람들과 지내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주던 사람으로부터 받던 스트레스도
과거에 비해 90%가 줄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매일 스트레스를 주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니 참고바랍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특징은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가지고 있다.
'상사가 나에게 성추행이나 다름 없는 발언을 했어도 참고 넘어간다.'
이 문장만 보더라도 이 속에서 '나의 의견'이란 것은 찾을 수 없다.
나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해결의 시작이 된다.
나 스스로가 말하는 감정을 무시한다면
그 다음 단계인 '상처 치료'에는 다가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나보다 상대 중심 사고과정이 습관화된 사람은
아무리 이 사실을 알아도 내 의견을 그 당사자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럴 때에는 과연 나의 남자친구였어도, 아내였어도, 가족이었어도
이 상황에서 무슨 요구를 할 수 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만약 "나를 아끼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요~"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수호천사, 평생 보호자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그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 폭력 가해자에게 혹은 매번 상처를 주는 것을 모르는 친구를
직접 만나 당신 대신에 도움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하지마세요'와 같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제시해주는데는 능하다.
그 수호자들의 이야기들을
내가 상대에게 나의 이름으로 전달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상상은 내가 과연 이렇게 말해도될까? 와 같은
망설임, 두려움, 불안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나의 의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여
말해야할 것을 말하지 못하는 일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이것을 한번 시도해본다면 그 다음부터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도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바로 전달하는 것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문제는 대부분
등장인물과 상황이 고착화되어있고
과거와 크게 다른 요소가 없다는 데에 원인이 있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시어머니의 이유 없는 모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몇 년 째 받아온 며느리.
이 장기적인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시어머니의 주변 상황을 변하게 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가 않지만
시어머니의 상황을 바꾸기는 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깨달은 것에 대해서는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 '새로운 상황'을 직접 만듦으로써 이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황'을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자신이 깊게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책에 제 3의 '상황','사람' 등이 직접 글을 써내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이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모함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기존 상황에
시어머니가 좋게 생각하는 남편의 친구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보자.
남편의 친구와 남편, 시어머니 이렇게 3명이서만 밥을 먹는 상황이라면
시어머니는 자신이 호감을 가진 사람들로만 구성된 상황에서 적대감을 내려놓게 된다.
그때 남편의 친구는 '요즘 여전히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모함하는 일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거 없는 비판은 누구에게나 큰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가 될텐데말이죠'
와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잘 변하지 않던 사람에게 생각의 변화를 조금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쓰더라도 모두에게 효과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2가지 방법을 통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간관계를 풀었던 나만의 팁을 적어보았다.
별 것 없어보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간관계로 인해 감정에 -100부터 +100까지 이르는 감정을
모두 느껴보았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 많았다.
그 감정의 밑바닥은 대부분 함께 지내는 가족이 주었다.
가장 힘든 것은 매일 보아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힘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지나가는 사람보다도 무관심하셨고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막말을 자주 하셨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만나면 그만이었지만
가족들은 그럴 수가 없기에 가족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이렇게 브런치에 적어보려한다.
가족들과 같이 통제불가능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의 브런치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