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공간에 찾아온 것들
올해 여름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글에 관심을 주셨다.
그만큼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 아끼고 길러온 자아에
좌절이 닥치고
비참한 어둠이 끼이며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줘서
손해보는 것도 딱히 없었던 것 같고
가시를 내뱉는 사람에게 별다른 대응을 안해도
어처피 내 인생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바쁘니
저 사람이 그러든 말든~ 넘겨버렸다.
그렇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게도
칼을 휘두르는 이 주변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꼴이다.
정작 내 마음은 챙기지 않는 성인군자 가면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최근 3년 간 무얼 하며 지내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기 이야기만 주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하는 얘기에는 이상하리만큼 부정적이었던 친구가
결혼식이 다가오니 10년 동안 하지 않았던 친절을 보였고
나는 그때서야 그 친구가 나를 그저 외로워서 친구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머릿 속에 전구가 번쩍! 켜지듯 통달하고말아버렸다.
그래도 결혼식에서 정산을 하듯 축의금을 내버리면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자기의 잘난 상황을 말하기 위해 부모님과 나를 은근슬쩍 깎아내리는 말들과
도대체 저런 이야기로 상대 기분은 왜 긁는걸까 싶을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주는 친척의 모습을 보고
이 인간관계에 대한 글이 시작되었다.
잊으려했지만 누군가의 말과 행동들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그들은 이기적인 말과 행동들을 죄책감 없이 내뱉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더 이상 참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최선으로 그들에게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지만
되려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은 옳다 라는 뻔뻔함만 내보였다.
그들에게는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울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그러니 이 글은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끊는 개념이 결코 아니다.
그들에게 스스로를 바라보게할 시간을 주기 위한 이야기이기도하다.
그런 시간이 그들에게 생기기 위해서는, 잠시 내가 그들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유형이 계속되는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연락할 수 있게될 수도 있지만 아직 현재의 나의 상태와 맞지 않기에 서로에게 부정적영향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6개월 전부터 실천해왔다.
- 만나고나서 집에 오면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 때문에 신경쓰이게 하거나
이상하게 만나고나면 은근하게 기분을 상하게하는 '검은연기형' 사람
- 나의 이야기의 일부분만 듣고 멋대로 판단하거나
대부분의 일에서 옳다/그르다 평가를 내리는 '흑백논리형' 사람
- 자기 세상에 갇혀 다른 것은 무조건 배척하거나 대부분 부정적으로만 얘기하는 '우물 안 비판형' 사람
- 타인(특별한 잘못 없는)에 대해 뒷담화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중인격형' 사람
- 본인이 외모에 민감해서 다른 이의 외모에도 유난히 민감하고 지적하는 '외모비평가형' 사람
- 공공장소에서 매너가 없거나 이런 건 배우지말아야겠다는 반면교사만 느끼게 해주는 '도덕책필요형' 사람
주변 친구들이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주로 부정적인 감정만 전달하고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주변엔 검은연기형과 우물 안 비평가형, 외모비평가형이 있었다.
이들을 과감하게 끊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 이들과도 계속 미래를 함께할거라는 생각이 지속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유난히 관대한 성격이었던
나는 내 성격적 특성을 순식간에 바꿔버리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내 시간에 들이지 않게되면서
불필요하고 부정적인 대화들이 나의 뇌 속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일들을 사전에 예방할수 있었다.
이는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사람과의 대화들
그리고 긍정적인 책 속의 문구들이 더 활발해질 공간을 내주었다.
즉,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감정과 상황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자존감과 자신감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타인은 통제하기 힘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주기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써 기억을 지우려하는 등 스스로를 통제. 하게된다.
그렇게 나의 시간과 감정에너지, 체력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되게 만든다.
신체도 더 피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샤라락 사라지면서
나는 중요한 일들에 더 몰입하게 되었고, 더 상쾌하고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나면 서로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달하려해주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만을 만나게 되었다.
스케쥴상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것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였다.
신기하게도 하루종일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의미없는 이야기만으로 시간을 채우는 사람은 인간관계 정리 후에는 거의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트렌드나 즐겁고 설레는 에피소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방법 등에 대해 나누게 되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신적인 도움. 물질적인 도움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최소. 서로에게 자신감을 주거나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서
나는 큰 도움을 받고있는 것이었다.
편협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을 멀리하고나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횟수도 더 많아졌다.
어떠한 가능성도 수용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한 생각들을 더 가까이하게 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나의 상상력과 사고력도 바다의 푸른 지평선처럼 시원하게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긍정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사람 사이에서도 하다보니
내가 혼자 있을 때에도 나의 두뇌 속 시냅스들이 알아서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듯했다.
나는 시간적으로도 자유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움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소심하고 친구를 많이 안사귀는 아이들이 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모임도 나갈 줄 알아야 이른바,
건강한 사람처럼 비춰진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늘어났고,
주말엔 꼭 약속을 잡아야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하게 되었다.
나도 몇 년 전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사람과 교류하거나 '함께 있는 시간의 양' 자체에만 집중하다보면
진정으로 나에게 가치있는 사람을 돌볼 시간은 부족해진다.
여러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적극적인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유해한 사람들로 인해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찾는 것이 첫번째 단계인 것 같다.
그들을 정리하기 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변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 관계에서 내 마음이 괜찮을 수 있는지 살펴야한다.
만약 그들에 대해 그동안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거나 결국 정리를 하는 행동이
내 옆의 사람을 잃는 것일까, 걱정이 든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인생에서 해로운 이들을 정리한다고
미래의 내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에 여유로운 공간이 생겨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줄 사람들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더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법칙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담에서 깨달은 견해임을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