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떠돌다가 늦깎이 생활 시인들의 글을 만날 때가 있다. 느즈막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삐뚤빼뚤 써 내려간 시들이 그것이다. 감각적인 기교 없이 할머니의 일상을 주욱 써놓은 것 같은데 그냥 '멍' 해질 때가 많다. 부산에 사시는 김영숙 할머니의 '눈물바다'라는 시도 그랬다.
< 눈물바다 >
거제도
아들네에
손주 봐주러 왔다
벌써 한 달.
마음은 공부 온통 복지관에
다 가 있다.
고민 고민
몇 번이고 생각 끝에 말했다.
아들아, 내가 공부하러 부산 복지관
가면 안 되겠니?
아들 며느리
온 식구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미안하다 아들아
이 엄마는 정말
공부가 하고 싶단다.
팔순이 된 할머니는 느즈막이 한글을 깨치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셨다. 한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엄마와 아내의 삶이 아닌 비로소 자신의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쓸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을. 그렇지만 팔순에 하는 한글 공부가 자식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지, 자신이 '사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의 걱정을 안고서.
'눈물바다'라는 시를 보며 은유 작가의 말을 써 올린다. 글을 감각적인 글발보다는 탄탄한 자료에서 나온다는. 자료가 글쓰기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팔순 할머니의 삶은, 그리고 그 길고 긴 삶 속의 수많은 '한'은 태산 같은 자료다.
감각적인 글발이 화려한 포장지라면 탄탄한 자료는 내실 있는 내용물이다. 팔순 할머니 가족의 눈물 바다로 써진 그 시는 글발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