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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May 15. 2021

초등 일기쓰기 고민하는 아이, ‘징검돌’을 놓아주자.

초등 2학년 아들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로 일기 쓰기.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다섯 줄(다섯 문장) 이상 일기를 쓰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세 줄 일기도 버거워하는 아이에게 다섯 줄 일기라니.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일기 쓰기는 고통스러운 창작행위다. 1학년 때는 일기 쓰기에 분량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3줄 정도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매번 매번 동일했다. ‘놀았다 – 재미있었다 – 다음에 또 놀아야겠다’ 소재도 항상 놀이한 이야기였다.      


미세먼지가 13년 만에 최대로 극성을 부린 주말. 아이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놀이를 했다. 저녁이 되어 일기 숙제를 하려는데 글감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아빠,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이 참에 아들에게 일기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 대화를 시작했다.     


“준아, 일기에 꼭 재미있었던 일만 쓰는 것 아니야. 재미없었던 일, 속상한 일도 일기에 쓸 수 있는 거야. 오늘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못 나가서 속상했지? 그거 일기에 써보면 어때?”     


준이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다급히 일기장에 뭔가를 적는다. ‘오늘은 속상했다. 왜냐하면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이 일기를 쓸 때 ‘왜냐하면’을 활용해서 ‘이유’를 써보는 것도 좋다고 알려줬다고 한다. 다음 문장 진도를 못 나가는 준이. 선생님의 조언에 착안해서 ‘접속사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날이 좋았다면 이라고 써보면 어때?”     


아이는 아빠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밟고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간다. ‘만약에 날이 좋았다면 공원에 가서 킥보드를 탈 수 있었을 텐데. 킥보드를 못 타서 아쉬웠다’ 마무리 한 문장을 놓고 쭈볏쭈볏 하고 있는 아이. 마지막 징검다리를 놓아주었다.     


“내일은!”     


아이가 징검다리를 밟는다. ‘내일은 날이 좋아서 밖에 나갔으면 좋겠다’     


아이가 일기를 쓸  고민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무엇을 쓸 것인가. 둘째, 어떻게 쓸 것인가. 우선, 일기의 글감을 찾아야 한다. 소재를 찾기 위해서 하루 일과를 나열하도록 해보자. 오전, 오후, 저녁, 시간대별로 카테고리를 나눠했던 일을 생각하면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무엇을 했는지, 그 당시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먼저 열거한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매일 재미있는 일, 특별한 일이 있을 수는 없다. 재미없던 일, 속상한 일, 반복되는 일상 등 모든 게 글감이 될 수 있다.

      

글감을 찾았다고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기 전에 먼저 ‘말’로 해보도록 하자. 두서없더라도 아이가 생각나는 대로 한 일과 그때 든 생각을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훌륭한 초고가 된다. 약간의 수정을 하면 글이 완성.

     

패턴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이는 이미 ‘과거(놀았다, 경험) - 현재(재미있었다, 감상) - 미래(다음에 또 놀고 싶다, 계획)’의 시제별 패턴에 따라 일기를 쓰고 있다. 글을 늘리는 것은 각 패턴의 글을 조금 구체화하면 된다. 예를 들어 ‘놀았다’는 문장은 ‘OO 하며 놀았다, 아빠가 노는 것을 도와주었다’라고 구체화할 수 있다. ‘재미있었다’는 문장은 ‘OO를 하니 재미있었다, 특히, 오늘은 내가 이겨서 더 기분이 좋았다’라고 문장을 덧붙일 수 있다.

      

글은 ‘생각의 징검돌’을 놓는 것과 같다. 아이는 아직 징검돌을 놓는 방법을 잘 모른다. 이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질문’을 통해 아이가 ‘생각의 징검돌’을 놓도록 도와줄 수 있다. '육하원칙'을 활용한 질문은 아이가 생각을 확장하고 글을 쓰도록 돕는데 유용하다. ‘누구랑 놀았어?’, ‘어떻게 하면서 놀았어?’, ‘특히 뭐가 재미있었어?’ 또한, '적절한 접속사'도 아이의 생각을 이어주는 훌륭한 징검돌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만약에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다음에는 (이렇게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는 나이에 비례해서 저절로 늘지 않는다.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그 방법을 꾸준히 훈련할 때 글쓰기 실력은 조금씩 늘게 된다. 글쓰기가 익숙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세 줄 일기, 다섯 줄 일기도 고역스러운 창작 활동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잘 풀어놓을 수 있도록 ’ 생각의 징검돌‘ 놓아주자. 어느 순간 혼자서 징검돌을 놓고, 장문의 글도 쑥쑥 써내는 기특한 아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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