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힘을 빼니 '시작의 문'이 열렸다

by 오늘도 생각남

할 일이 많은데 자꾸 시작을 미룰 때가 있다.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 한참 동안 책상 정리만 하는 학생처럼. 그런 ‘회피 심리’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부담감’이 있다. 그 부담감은 한 마디로 ‘잘’이란 말과 동의어다. ‘잘’ 이란 말은 우리 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잘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몸은 딱딱하게 굳게 돼있다. 마음과 몸은 일심동체라 마음이 무거워지면 몸도 무거워지는 법이다.


누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잘’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묶일 때가 많다. 그 굴레의 무게는 천근이고 만근이다. 그 무게에 옴짝달싹 못하고 딴짓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돌아본다. '잘' 이란 굴레를 끊고 앞으로 나아간 경험들을.


브런치에 ‘1일 1 글쓰기’의 루틴을 목표로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루틴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우선 일상에서 매일 글을 쓸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함정은 ‘충분한’에 숨어 있다. 글 쓸 시간이 있는데도 고민 고민하다 보면 주어진 시간 안에 글이 마무리가 안될 때가 많다. 그러면 하루가 넘어간다. 하루가 지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루가 지났는데 조금 더 '잘'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이다.

글쓰기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을 하나 알아낸 것이 있다. ‘필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필사를 하고 댓글을 달 듯 단상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글쓰기보다 쉽다. 필사로 이미 일정 정도의 분량을 채웠기 때문에 댓글만 달면 된다. 신기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 댓글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물꼬가 터지니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글의 시작이 부담 없으니 뒷 문장이 자연스레 따라붙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문장은 문장을 부른다'고 말했나 보다.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글을 써서 브런치에 100개가 넘는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1일 1 마인드맵 그리기’도 나의 루틴 목표 중 하나다. 매일 마인드맵 1개를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제를 정해야 하고, 중심 이미지도 떠올려야 한다. 주요 가지도 그려야 하고 세부 가지도 완성해야 한다. 마인드맵의 완결성도 생각해야 한다. ‘잘’ 그릴라 치면 끝도 없다. 어떻게 ‘1일 1 마인드맵 그리기’ 루틴을 완성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 찾아낸 방법이 있다. 마인드맵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하루 중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상황 또는 문장을 떠올린다. 마인드맵의 주제는 ‘오늘의 인상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가 마인드맵의 주요 가지가 된다. 부담 없이 키워드에 맞게 세부 가지를 그려나가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담 없이’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그린 마인드맵의 누적 개수가 최근 300장을 넘겼다. 200 장대의 마인드맵을 그릴 때 생각했었다. 언제 300장이 될까? 그런데 힘을 빼고 그리다 보니 달력의 날짜가 바뀌는 속도만큼 마인드맵을 그린 누적 개수가 늘어났다.


‘1주일에 책 한 권 읽기’. 이것은 독서 루틴 목표다. 그런데 사실 한 달에 책을 한 권 읽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속청 독서’라는 책을 만나게 됐다. 속청 독서의 기본 원리는 ‘빨리 읽기’와 ‘반복 읽기’다. 저자는 오디오북을 활용해서 2배속 또는 3배속 등 빠른 속도로 책을 여러 번 읽으라고 조언한다. 평일에는 출, 퇴근 버스에서, 주말에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하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2배속으로 오디오북을 들었다. 지난주에 그렇게 3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꼼꼼히 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대강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 책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정도만큼은 이해가 됐다. 속청 독서로 책을 읽으면 적어도 한 달에 4~5권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별도의 독서시간을 마련하지 않고 이동 시간이나 집안일을 하는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해서.

1일 1 글쓰기, 1일 1 마인드맵 그리기, 1일 1 책 읽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완벽하게’라는 마음만 살짝 내려놓으면 된다. ‘잘’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조금만 힘을 빼보자. 힘을 빼는 순간 '시작의 문' 앞에서 빙빙 도는 것을 멈추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쓱쓱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마침표를 만나게 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