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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Aug 20. 2021

알고 보니 나도 공범이었다.

아내는 팔 베개가 싫다고 했다. 사실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해준 팔 베개는 신혼 1~2개월을 넘지 못했다. 결혼 전 아내는 결혼하면 꼭 팔 베개를 해달라고 했었다. 그것을 ‘사랑받고 있다’는 증표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시절 깨달은 게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팔 저림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 새벽이면 팔이 저려 잠을 깨곤 했다. 아내의 머리를 치우자니 아내가 깰 것 같았다. 팔은 뺄  없고, 팔은 저리고, 뭐라도 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에 침을 묻혀 코에 발라보기도 했었다.

      

팔 베개와 나의 두 번째 인연은 아들 때문이었다. 쌍둥이 중 첫째는 1.3kg으로 태어났다. 조산을 했던 터라 성장이 미숙하여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병원을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첫째는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둘째보다 더 자주 깨서 울어댔고 잠들더라도 깊은 잠을 못 잤다. 어머니는 아이가 ‘불안’ 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인큐베이터에 갇혀있던 2개월.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하고 이상한 상자 안에 갇혀있었던 아이. 수많은 인큐베이터 아이 중 한 명이었던 아이. 간호사들의 돌봄이 엄마의 사랑에 비할 수가 없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위한 보살핌이 필요했다. 태어나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두 배, 세 배 더 줘야 했다.


하루 종일 쌍둥이 육아로 지친 아내에게 새벽에 수시로 깨는 첫째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둘째는 아내가 데리고 자고, 첫째는 내가 데리고 자기로 했다. 새벽에 깨서 울어대는 아이를 볼 때면 ‘나 혼자 왜 인큐베이터에 남겨 뒀어요?’라고 묻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다시 잠들 때까지 토닥거리는 일뿐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서도 아빠의 '토닥토닥’은 계속되었다. 다섯 살쯤 됐을 때부터는 팔 배게를 해주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을 했다. 신기하게도 쌍둥이 중 둘째는 불편하다며 팔 배게를 싫어했지만 첫째는 팔 배게 안에서 폭 안기어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성향 차이일 수 있겠지만 출생 직후 엄마 품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은 아이와 인큐베이터 안에서 외로운 시간을 혼자 견딘 아이의 차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베개는 아이가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한 번은 고향 집에 내려가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팔 베개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니는 대뜸 말씀하셨다.
      

“팔 아프다. 팔 베개 이제 그만 해라.”     


그냥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다. 그런데 사연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 팔 베개를 많이 해주셨었다고 하셨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집이 낡아 외풍이 심했다. 문 틈,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한 겨울, 바닥은 연탄보일러가 따뜻하게 데워줬지만 외풍은 어쩔 수 없었다. 방바닥은 따스운데 코 끝이 시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잠을 잘 때면 신문지를 접어 문틈과 창문 등에 끼워 넣어 바람을 막는 게 일이었다.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문이라도 한번 열 때면 신문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떨어진 신문지를 다시 문 틈 사이사이 끼워놓는 것도 일이었다. 가끔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신문이 끼우는 게 걱정돼 볼 일을 참은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외풍 때문에 막둥이가 추울까 봐 팔 베개를 한 채로 꼭 껴안고 주무셨다고 한다. 그때 얼마나 팔 베개를 하셨는지 지금도 어깨가 저리신다고 하셨다. 연세가 69세이신 어머니는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최근 팔을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어깨가 아프시다며 수술은 받으신 어머니. 나는 어머니께서 오랜 농사 일로 무리하셔서 어깨 수술을 받으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나도 공범이었다. 어머니의 어깨를 닳게 한 공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에게 팔 베개를 하고 토닥이는 내 모습에서 외풍에 막둥이가 추울까 봐 팔 베개를 하고 꼭 껴안고 있던 어머니를 본다. 사랑에도 중력이 작용하는 것일까? 사랑은 왜 아래로만 흐르는 걸까? 나는 왜 한 번도 어머니께는 팔 배게를 할 생각은 못 해봤을까? 한편으로 나는 주범이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돌려드리지 못하는 주범. 오늘 저녁 아들에게 팔 베개를 할 때는 코 끝이 시려울 것 같다. 이제 우리집엔 외풍도 들어오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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